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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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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

입력
2005.07.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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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는 사람을 두 번 감탄하게 만드는 사진에세이집이다. 가장 흔한 단행본 크기라서 한눈에 봐도 지면이 사진을 가두는 데도, 책에 실린 사진들은 눈이 시리고 절로 탄성이 터져 나올 만큼 빛난다.

알래스카라는 천연의 자연이 베풀어준 원초적인 아름다움에, ‘내셔널 지오그래픽’ 등에 작품을 발표한 일본의 일급 야생사진작가 호시노 미치오(星野道夫)의 출중한 사진 실력이 더해진 결과다.

사진에세이집이 널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아졌다. 수준도 아마추어에서 프로까지 천차만별이다. 사진만이 아니라 산문까지 곁들여지니 사진 솜씨만 좋다고 책이 그럴 듯해지는 것도 아니다. 글 솜씨가 좋아야 한다. 하지만 일부 사진에세이집은 사진도 시원찮고, 글도 그저 그렇다.

사진이 좋다 싶으면 글이 그만하지 못하거나 그 반대인 경우가 대다수다.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는 하지만 사진과 글이 모두 수준급이다. 정확하게 말해 사람을 더 감동케 하는 건 글 쪽이다. 책을 천천히 읽어나가다가 그래서 한 번 더 놀란다.

19세에 알래스카의 자연에 매료돼 사진작업을 해온 작가는 책에서 그가 20여년 동안 보았던 알래스카의 자연, 거기서 만난 사람, 일상과 사진 작업,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담담하게 들려준다. 그런데 묘하게도 평이한 글 중간중간에서 사람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문장들이 불쑥 튀어나온다.

캘리포니아 출신의 밥 율은 에스키모와 결혼해 북극의 자연 속에서 40년을 살았다. 그는 ‘즐기기 위해서 동물을 죽이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 영웅담으로만 듣던 곰 세 마리를 한꺼번에 만나자 저도 모르게 마구 총을 쏘아댄 뒤 ‘늘 평화를 주었던 자연을 배반’했음을 통감하고 목이 멘다.

호시노는 그 목메임이 ‘우리가 잊어버린, 사냥하는 생물과 사냥 당하는 생물 사이에 존재하는 약속’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풀이한다. 식물학자 짐이 사슴의 일종인 카리부 사냥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모습을 그리며 ‘비록 어린아이들이지만 한 생명을 끝장내고 손으로 직접 살점을 만지면서 뭔가를 느꼈을 것이다.

우리를 비롯한 모든 생명이 다른 생명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 그 고기를 입안에 넣음으로써 그 카리부의 생명을 자기가 잇게 된다는 것’이라고 쓴다. 오로라의 신비한 빛이 무언가를 들려준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 속 풍경에 벌써부터 있었던 것’이라고 한다.

이 책은 아마도 오래도록 읽은 이의 책꽂이에 남아 있을 듯 싶다. 그리고 “나도 사진에세이집 한 권 쯤”하고 욕심 내는 사람에게는 훌륭한 모범이 될만한 책이다.

물론 오르지 못할 봉우리일 가능성이 크지만. 호시노는 42세이던 1996년 8월 러시아 캄차카 반도 쿠릴 호반에서 불곰의 공격을 받아 숨졌다. 그의 사진은 해마다 일본 주요 도시에서 순회 전시되고 있으며, 에세이는 일본 국어교과서에 실려 있다고 한다.

김범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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