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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평등주의, 그 주범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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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평등주의, 그 주범은?

입력
2005.07.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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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박용성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정운찬 서울대 총장을 속된 말로 좀 ‘씹어’ 보려고 했다. 그런데 웬걸! ‘주범’은 두 분이 아니었다.

무슨 이야기인고 하니 요즘 부쩍 ‘평등주의’를 성토하는 언설이 넘쳐 나고 있다. 그래서 ‘부동산 정책도 평등주의 때문에 망치고, 교육도 평등주의 때문에 망치고 있다’는 유의 주장이 횡행하는 데 대해 딴지를 걸려고 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 보아도 두 사람은 대놓고 “평등주의 때문에 망한다”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최근에 그런 주장을 한 유명인사는 좌승희 전 한국경제연구원장 정도다.

그러나 좌씨의 지적 수준은 “성매매금지법은 인권을 침해하는 좌파적 정책”이라는 발언(2004년 10월) 등을 통해 스스로 누차 입증한 바 있으므로 비경제학적 환원주의로 얼룩진 주장을 되풀이했다고 해서 새삼 논할 것은 없겠다.

진짜 주범은 언론이었다. 섭섭해 하실 언론인들이 계실 것이므로 ‘일부 언론의 사설, 칼럼, 논평 등’이라고 해야겠다. 포털 사이트에서 ‘부동산 & 평등주의’ ‘교육 & 평등주의’를 한번 쳐 보시라. ‘평등주의 때문에 나라 망한다’는 얘기에는 대부분 사설, 칼럼, 데스크 칼럼, 시론, ○○○칼럼, 취재노트 같은 문패가 달려 있다.

이들은 유명인사들의 언급이 나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입맛대로 평등주의 비판으로 해석하고 거기다 자신 또는 소속 회사의 이데올로기를 마구 덧칠해 댄다. 중요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 별 실체가 없는 개념을 엉뚱하게 딱지 붙임으로써 진실을 흐리고 초점을 분산시키고 사태를 꼬이게 하고 책임을 떠넘기는 무책임하고도 고질적인 작태다.

어설픈 노무현 정권 초기에 좌파 정권이다 아니다를 가지고 얼마나 말이 많았던가? 그래서 학술적인 결론이라도 났던가?

정부의 정책으로서 그리고 “배 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다는 비뚤어진”(한 신문 사설) 정서로서 평등주의는 진짜 존재하고 또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을까?

평등주의를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 정운찬 총장도 “서울대생의 40%가 서울 출신이고, 특히 경제 경영 법학 3개 인기학과의 경우 60%가 서울 출신이며, 그것도 강남 서초 송파 등 강남권 3개 구에 집중돼 있어 갈수록 계층 간 이동을 가로막고 있다”(2003년 10월 강연)고 지적한 바 있다. 평등주의가 영 맥을 못 추는 셈이다.

정부가 정녕 평등주의를 추진했다면 정권 지지율은 왜 바닥이며 500만이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왜 여전히 하루하루가 힘겹기만 할까?

“부자가 무슨 죄냐? 공부 잘하는 것도 죄냐?”고 볼멘소리 하시는 분들을 왕왕 본다. 누가 그렇게 말하는 사람 없다. 대한민국은 다중의 평등주의 정서 때문에 소수의 잘 나가는 사람이 겁 먹고 주눅 들어 지내는 사회가 아니다. 그랬다면 아마도 민주노동당이 진작에 집권하고 있을 것이다.

평등주의나 좌파라는 단어는 요즘 정말 기분 더럽겠다. 자신의 진정한 의미를 모독하는 설가(說家)들 때문이다.

이제 제발, 실체 없는 이데올로기 공세는 접자. 좋게 봐 주면 잘 몰라서 하는 헛소리이고, 나쁘게 보면 뻔히 알면서도 온갖 문제에 평등주의를 들씌워 은밀한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얄팍한 의도를 끼워 파는 짓이다. 몰랐다면 바보고 알고 했다면 몹쓸 짓이다.

현실로, 사실로 돌아가자. 거기서 하나하나 해결책의 장단점을 따져 비판하고 대안과 실천방안을 꼼꼼히 논의하자.

이광일 기획취재부장 ki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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