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1997년 안기부의 불법 도청 테이프인 ‘X파일’이 언론에 공개되자 홍석현 주미대사의 거취 문제로 고심하고 있다. 중앙일보 사장을 지낸 홍 대사가 삼성그룹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과 함께 MBC에 대해 도청 테이프 방영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면서 본인이 테이프 속의 중심인물이라는 점을 사실상 시인한 셈이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X파일 사건에 대해 미묘한 반응을 보이면서 말을 아끼는 이유도 바로 홍 대사 거취 문제와의 연관성 때문이다. 청와대는 현정부와 무관한 97년 대선자금과 도청 문제에 대해서는 떳떳하게 진상을 밝힐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조사 결과에 따라서는 홍 대사 경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 신경을 쓰고 있다.
22일 청와대 일일현안점검회의는 X파일에 대한 언론 보도를 분석한 뒤 “진상조사 결과를 지켜보자”고만 정리했다.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은 홍 대사 거취에 대해 “아직 거론할 단계가 아니다”면서 “먼저 사실 관계를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정원 조사결과가 나와야 홍 대사 문제를 검토할 수 있다는 얘기다.
청와대에서는 “당장 홍 대사를 경질하기는 어렵다”는 분위기가 우세하지만 “잇달아 도덕성 논란에 휩싸인 홍 대사가 일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는 의견도 적지 않다.
홍 대사는 지난 2월 농지매입을 위한 위장전입 사례가 공개되면서 자격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으며 최근 유엔 사무총장 출마 의지를 피력해 구설에 휩싸였다. 유엔 사무총장 출마 문제가 논란이 됐을 때 청와대는 “지금은 홍 대사가 6자회담 등 현안에 전념할 때”라며 제동을 걸기도 했다.
홍 대사는 X파일 사건이 터진 직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해 진실하지 못한 자세를 보였다. 또 언론사 사장이 정치자금에 관여한 것으로 드러날 경우 도덕적으로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난 연말 홍 대사를 내정할 때는 X파일의 존재를 몰랐기 때문에 그 점에 대해 검증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청와대 안팎에서 홍 대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의견들이 확산되고 있다. 홍 대사는 부임 5개월 만에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김광덕 기자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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