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 없는 세상에서 열 두어 살의 어린 소녀가 혼자 힘으로 살아가기란 얼마나 힘든 일일까. 집도 부모도 이름도 없다. 잠자리는 거름더미이다.
거름에서 나는 열로 추위를 견디는 것이다. 살기 위해 도둑질과 동냥도 마다지 않는 소녀를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다. 지저분하다고 욕하고 침 뱉고 몰매를 줄 뿐이다.
소녀는 우연히 산파를 따라가 수습생이 되지만 일은 고되고 보상은 형편없고 모욕은 계속된다. 거름더미에서 잔다고 ‘쇠똥구리’로 불리고 ‘멍청이’ ‘쓸모없는 물건’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이 소녀가 자기자신을 사랑할 수 있을까.
르네상스 이전 중세 영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 ‘너는 쓸모가 없어’는 아주 우울하게 시작한다. 작가는 소녀의 가혹한 현실을 건조한 문체로 냉정하게 그려나간다.
하지만 ‘쇠똥구리’는 벌레처럼 취급 받으면서도 아주 천천히 자신의 가치를 깨달아가고 자신감을 갖게 된다. 배고프고 힘든 나날을 견디면서 조금씩 산파의 기술과 지식을 제 것으로 만들어가던 소녀는 어느날 산파가 없을 때 혼자 힘으로 아기를 받아냄으로써 마을 사람들의 인정도 받게 된다.
소녀가 스스로 일어서는 것처럼 보일 무렵, 시련이 닥친다. 난산의 산모를 구완하다 실패한 것이다. 좌절감에 소녀는 산파의 집을 떠나 다른 마을 여인숙 하녀가 된다. 하지만 결국 돌아온다.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산파의 집 문을 두드리며 소녀는 외친다. <“당신이 나를 들어오지 못하게 해도 나는 다시 시도할 거에요. 난 포기하지 않는 법을 알아요. 난 달아나지 않을 거에요.” 문이 열렸다.> 책은 거기서 끝난다.
서양 중세를 배경으로 한 소설인 만큼 호기심을 자극하는 낯선 풍경이 많이 나온다.
산파가 쓰는 온갖 약초와 부적들, 이를테면 날도마뱀 똥과 쥐의 귀, 개구리 간과 두꺼비 태운 재, 달팽이 젤리, 마녀를 막는 겨우살이 나뭇가지 등은 중세를 지배한 마법과 미신의 단면이다. 의학 기술과 과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그 시대의 출산 풍속과 산파술을 보여주는 장면도 흥미롭다.
자신이 쓸모 있는 존재임을 깨닫고 스스로를 사랑하게 되기까지, 그리하여 포기하지 않는 용기를 얻게 되기까지, 소녀가 헤쳐가는 잔인한 시간을 작가는 눈물 자국 없이 아주 짧게 끊어지는 문장으로 쓰고 있다.
이러한 무정함이 오히려 독자의 가슴에 더욱 깊은 골을 새기며 서늘한 감동으로 파고든다. 사춘기를 통과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중학생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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