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2002년 9월17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총리와 채택한 평양선언에서 일본인 납치 사실을 통 크게 시인했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을 둘러싸고 민감한 파장을 일으킬 사안을 화끈하게 시인한 것은 김 위원장 다운 광폭외교라고 할 만했다.
유감표시와 함께 재발 방지 조치까지 약속한 김 위원장은 고이즈미 총리의 귀국 항공편에 생존 납치피해자 5명을 함께 보냈다. 임기 내 납치자 문제를 해결하고 북일국교정상화를 이루겠다고 공언해온 고이즈미 총리에겐 큰 선물이었다.
△ 김 위원장은 통 큰 고백외교를 통해 북일수교를 이끌어내고 식민지배 피해 보상금 성격의 막대한 무상자금 지원과 경제협력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전혀 다르게 전개됐다. 납치피해자 가운데 사망자들의 사인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면서 일본의 대북여론은 평양선언 전보다 오히려 나빠졌다.
일본 내 이런 분위기는 2차 북핵 위기와 맞물려 대북제재론으로까지 비화됐다. 일본은 만경봉호의 입항 제한, 북한산 어패류의 원산지 강화 등을 통해 사실상 대북 경제제재에 들어갔다.
△ 고이즈미 총리는 이런 와중에 2004년 5월 다시 평양을 방문, 2차 북일 정상회담을 갖고 납치생존자 가족의 일본 방문을 성사시켰다.
북한은 월북 주한미군탈영병 출신으로 납치피해자 소가 히토미씨의 남편인 찰스 젠킨스와 자녀들의 일본 송환을 허용하고 사망한 납치피해자 중의 한 사람인 메구미씨의 유골도 일본으로 보냈다.
그러나 굴욕적일 만큼 저자세를 취하며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꾀했던 북한의 노력은 메구미 유골의 가짜 파문으로 완전히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 사건 이후 북한은 격렬한 대일 비난 자세로 돌아섰다.
△ 김 위원장은 지난달 정동영 통일부장관과의 면담에서 “찰스 젠킨스까지 일본으로 보내줬더니 반북 광고탑으로 이용하고 있다”면서 일본 정부의 처사를 강력히 비난했다고 한다. 일본 사회의 우경화와 맞물린 일본 내 반북 여론 탓이겠지만 일본 정부의 납치자 문제 집착은 6자회담 전도에도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일본은 우리 정부 등 관련국들의 우려에도 6자회담에서 납치자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고집한다. 북한은 북한대로 일본과는 상대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이다. 어렵사리 마련된 자리인데 분별 없는 행동으로 재를 뿌리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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