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일본 규슈 남부의 조그만 섬 고시마(幸島)에서는 영장류학계를 깜짝 놀라게 한 사건이 벌어졌다. 생후 18개월의 새끼 원숭이 이모가 고구마를 물 속에 비벼 흙을 씻어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행동은 섬의 모든 원숭이들에게 전파되었다.
50여년이 지난 지금, 고시마의 원숭이들은 고구마를 바닷물에 담갔다가 먹는다. 이젠 흙을 털어내지 않아도 되지만, 그들은 조상들의 행동을 발전시켜 간간한 맛을 즐기고 있다.
고시마 원숭이의 사례는 동물들도 과연 문화를 가지고 있는 지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동물들이 유전자에 각인된 본능대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행동을 만들어내고 발전시킨 후 이를 학습에 의해 전달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과연 문화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독점적인 자산이고 동물과 인간을 구별하는 절대적인 잣대인가. 네덜란드 출신 생물학 박사로 30년 넘게 영장류를 관찰하고 연구해 온 미국 에모리대학 프란스 드발 교수의 ‘원숭이와 초밥 요리사’는 “아니오”라고 답한다.
대신 문화가 미술이나 음악, 상징과 언어 그리고 대량소비사회에 맞서 지켜낼 필요가 있는 어떤 유산을 의미 하지 않고 다른 이나 구세대로부터 습득한 지식과 습관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동물들도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드발은 침팬지 어미가 새끼들에게 돌로 견과를 쪼개는 방법을 알려주거나 풀로 자기 치료를 하는 방법을 배우는 유인원, 타협적인 무리와 혼재 시키면 호전적인 붉은 원숭이도 화해의 기술을 배우고, 무리를 분리한 이후에도 보다 평화적으로 살아간다는 여러 예를 들며 동물들에게도 엄연히 문화가 존재함을 소개한다.
하지만 저자는 단지 동물과 문화라는 한정적인 분야에만 돋보기를 들이대지 않는다.
▦우리는 다른 동물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우리들 자신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고 있는가 ▦그리고 문화의 본질이란 무엇인가라는 세가지 주제를 통해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다각적으로 바라보며 문화에 대한 입체적 접근을 시도한다.
각각 한 권의 책으로도 쓸 수 있는 세 가지 주제의 방대한 내용을 헤집으며, 드발은 인간과 동물사이의 관계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문화와 자연의 경계를 허물어트리면서 인간이 자연에 대할 때 가지고 있는 편견들을 통렬히 비판한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인간의 문화와 인간의 본성이 극단의 위치에 있다는 서양의 이원론적 사고관에 대한 문제점도 제기한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전통을 따르는 서양은 하늘과 땅 사이에 생명체의 계층이 존재하고 무엇이든 양극으로 나누려는 생각이 깊숙이 침투해 있다.
이와 같은 이분법은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을 주긴 하지만, 복잡하거나 미묘한 의미를 간과하게 만들고 진실에 도달하는 것을 방해한다. 또한 동물이 의인화되는 것을 기피하게 하고 자연과 문화를 인위적으로 분리시키려는 태도를 만들어냄으로써 문화의 편협한 시각이 생겨났다고 말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저자는 극단적인 자연 대(對) 문화의 이분법을 취한 프로이트와 레비 스트로스를 맹비난하고 모든 것은 유전자가 결정한다고 주장하는 ‘이기적 유전자’ 학파를 공격한다.
반면 인간이 동물이 될 수도 있고 동물이 신이 될 수도 있다고 바라보는 동양의 시각은 동물의 행태를 제대로 바라보고 평가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호의적으로 평가한다. 고시마 원숭이의 행동을 연구한 이마니시 긴지의 업적도 이런 시각 때문에 가능했다며 주장한다.
461쪽의 두툼한 분량에 주석과 참고문헌만도 60쪽에 달하지만 비전문가도 단숨에 읽을 수 있는 책. 제목은 유인원을 비롯한 다른 동물들의 학습과정이 초밥을 직접 만들기 전까지 수년간 말없이 장인의 어깨 너머로 관찰을 계속하며 수련을 쌓는 견습생의 모습을 닮았다는 데서 착안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