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남부지법은 21일 오후 8시께 한시간 후에 방송 예정됐던 MBC의 안전기획부 불법도청 테이프 내용을 ‘날 것’ 그대로 방송하는 것을 금지했다. 테이프의 원음을 직접 방송하는 것, 테이프에 나타난 대화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는 것, 테이프에 나타난 실명을 직접 거론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3가지를 제한한 내용의 결정이었지만 MBC는 이 결정대로라면 사실상 구체적인 방송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이를 위반할 경우 위반 행위 한 건 당 방송금지가처분 신청자인 홍석현 주미대사와 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에게 각 5,000만원씩을 지급해야 한다고도 명시했다. 이에 따라 이날 MBC 뉴스데스크에서는 이미 다른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내용 이상의 것이 방송되지 않았다. 오히려 같은 시간 우회 취재를 통해 테이프 관련 내용을 방송한 KBS가 더 자세히 내용을 방송할 정도였다.
사실 불법도청을 통해 수집된 정보는 그 정보가 사실이더라 하더라도 외부에 알렸을 경우 형사처벌을 받아야 한다. 통신비밀보호법상 불법 도ㆍ감청으로 얻은 대화 내용을 공개하거나 누설했을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현행법대로라면 불법도청을 한 전직 안기부 직원은 공소시효(5년)가 지나 형사처벌을 받지 않아도 되지만 이를 보도한 언론사만 민형사상 처벌을 받는 사태가 올 수 있는 상황이다. 방송예정 사실을 알고 즉각 가처분 신청을 낼 만큼 이 사안에 사활을 걸고 있는 삼성그룹과 홍 대사의 대응자세를 볼 때 더욱 그렇다. 이 사안이 ‘유력언론사와 대기업의 부패고리와 정치공작’이라는 본질을 떠나 국민의 알권리 문제로 비화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또 도청 테이프로 부패사실이 드러나는 정ㆍ관계 인사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5,000만원 이상의 거액 뇌물을 받은 사실이 확인되지 않는 한 대부분 공소시효가 지난 상태여서 처벌이 어려울 전망이다.
도청 테이프는 1993년~1998년에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정치자금법 공소시효(3년) 등은 모두 지났고 공무원이 직무와 관련한 대가로 5,000만원을 넘는 돈을 받았을 경우 적용되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죄(공소시효 10년)만 처벌이 가능한 상황이다
박원기기자 one@hk.co.kr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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