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밤 해안초소를 순찰하던 소초장과 무전병이 괴한들의 습격을 받아 총기와 실탄을 빼앗긴 사건은 일련의 군 기강해이 사건의 결정판이다. 올들어 훈련소 인분사건에 이어 철책선 경계실패, 전방 경계초소(GP) 총기난사 사건 등 굵직굵직한 군기(軍紀) 사고들이 잇따르고 있지만 군은 미봉책으로 일관, 또다시 어이없는 사건을 불러왔다는 지적이다.
지휘계통이 책임지는 모습을 보일 때라는 주장과 함께 윤광웅 국방장관과 이상희 합참의장의 인책론까지 나오고 있다.
흉기에 당한 소총과 실탄
20일 밤10시10분께 강원 동해시 육군 23사단 소속 해안부대 소초장 권모(26)중위는 통신병 이모(22)상병을 대동한 채 여느 때처럼 한섬 해수욕장 남쪽 초소를 점검하고 북쪽 초소로 향하기 위해 소나무 숲을 지나고 있었다.
이 때 컴컴한 숲속에서 갑자기 괴한 2명이 나타나 앞서 걷던 이 상병에게 “길 좀 물읍시다”며 시비조로 말을 걸었다. 뒤쳐진 권 중위가 “뭐야”라며 앞으로 나서는 순간 괴한들은 흉기로 권 중위의 왼쪽 팔을 찌른 뒤 준비한 끈으로 2명을 결박하고 권 중위의 소총과 15발들이 탄창 2개, 이 상병의 소총과 무전기를 탈취했다.
범인들은 권 중위와 이 상병을 트렁크에 태운 뒤 사고지점에서 약 3㎞떨어진 동해터널 앞쪽에 버리고 강릉방향으로 달아났다.
합동참모본부 관계자는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이라 권 중위나 이 상병 모두 손쓸 틈이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GP총기사고 이후 육군은 지휘서신을 내려 전방 경계초소나 해안초소 등 격오지 부대에 근무태세 강화와 근무 중 사고방지를 당부한 바 있다.
특히 이 부대 소초장들이 최근 신참자로 교체돼 집체교육을 받는 바람에 대대 인사장교인 권 중위가 대리근무를 서다 사고를 당한 것으로 드러나 근무체계의 미비점도 지적되고 있다.
느긋하게 진행된 상황조치
권 중위와 이 상병은 버려진 장소에서 약 700㎙떨어진 1함대사령부 후문초소까지 뛰어가 근무자에게 휴대폰을 빌려 소속 부대에 사고소식을 보고했다. 군 당국은 사건 직후 동해 일대에 대간첩침투작전의 가장 높은 경계태세인 ‘진돗개 하나’를 즉각 발령하고 강릉과 대관령 일대에 검문소를 설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진돗개 하나가 발령된 시각은 권 중위가 피탈사실을 신고(밤10시50분)한 지 45분이 지난 밤11시35분. 동해안과 평행한 7번 도로 등에 600여개의 군경 합동검문소는 이보다 10분 뒤인 11시45분에 설치가 완료됐다. 범인들은 이미 사건현장을 유유히 벗어나 종적을 감춘 뒤였다.
동해=곽영승기자 yskwak@hk.co.kr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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