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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향의 씨네다이어리/ 이름 바꾸기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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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향의 씨네다이어리/ 이름 바꾸기 놀이

입력
2005.07.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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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정사’ 등을 연출한 감독 이재용씨는 “이제 나를 이재용 감독이라 부르지 말고 개봉 때까지만 ‘다세포소녀 이 감독’으로 불러 달라”고 요청했다.

농담이 아니라, 이제 신문에도 정확하게 ‘다세포소녀 이 감독’으로 써 달라는 것이다. 그는 지금 ‘다세포소녀’라는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이재용이라는 이름이 결코 삼순이 식의 촌스러운 이름도 아니며, 그 이름으로 떳떳치 못한 짓을 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굳이 이름을 바꾼 것은 바뀐 이름이 자신을 영화 ‘다세포소녀’의 B급 정서 속으로 몰아 넣으리라는, 이름의 자기 암시적 기능을 믿기 때문일 것이다. 새 영화에 아주 ‘필(feel)’을 받아 전작의 그늘을 벗어나서 다세포소녀에 푹 빠져들겠다는 비장함이 느껴지는 이름이다.

원작만화 다세포소녀를 보다 보면, 세련됨 우아함 같은 단어가 떠오르는 스타일리시한 작품을 내 놓았던 그가 이 만화를 어떻게 영화로 만들겠다는 건가 싶다.

남학생이 월경 체험을 위해 설사약을 먹은 후 생리대를 착용한 채 체육 수업에 참가하고 성교육 시간에 ‘왜 콘돔을 쓸까요’라는 선생님의 질문에 여학생이 “0.1mm라도 늘어났으면 하는 소망 때문이죠” 라고 대답하는 식으로, 원작만화는 화들짝 놀랄 정도로 엽기적이고 때론 지저분하기 때문이다.

마치 메신저 창에서 대화명 변경하듯 어느날 이름을 바꾸겠다고 공표하고 나선 그가 의외로 충격적이지 않은 것은 아마 우리가 평소 이름바꾸기 놀이에 익숙하고 또 몰두해 있기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대화명(이름)을 바꾸면 마음가짐이 바뀌고 다른 사람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지는 메신저 세상식의 발상이다.

지독한 몸살에 걸린 사실에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다가도 메신저 대화명을 ‘감기 걸려 죽을 지경’이라고 입력하면, 곳곳에서 안부 메시지가 쏟아진다. 대화명은 성격까지 반영하는데 실시간 뉴스창에 가까울 정도로 자주 대화명을 바꾸는 신경질적인 성격의 사람, 온갖 이야기를 중개 방송하는 부지런한 이, 그저 자신의 이름을 대화명으로 사용하는 무심한 이도 있다.

이름바꾸기 놀이가 가끔은 지나친 노출증인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태어나자마자 갖게 되는 이름은 내 것이되, 사실은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름바꾸기 놀이는 정말 나를 위한 이름을 원하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다세포소녀 이 감독처럼. 여하튼 오늘 하루 내 이름은 ‘영화 다세포 소녀가 궁금한 사람’ 정도쯤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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