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19일 밤 9시 샌드라 데이 오코너 연방 대법관의 후임으로 보수색이 짙은 존 로버츠(50)연방 항소법원 판사를 지명했다. 황금시간대의 시청자를 겨냥한 기습적인 대법관 지명자 발표였다.
부시 대통령이 중도적 보수주의자인 오코너 대법관의 후임으로 확실한 보수주의자를 선택함에 따라 보수와 진보세력, 공화당과 민주당 사이에 치열한 인준 전쟁이 예고되고 있다.
로버츠 지명자는 특히 여성의 낙태 권리를 부분 인정한 1973년 ‘로 vs 웨이드’대법원 판결을 뒤집어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그의 인준 과정에서 지난 대선 ‘가치 전쟁’이 재연될 것으로 보인다.
로버츠 지명자가 상원 인준을 받게 되면 오코너 대법관의 균형자적 역할로 보수와 진보적 입장이 팽팽히 맞섰던 미 대법원은 보수 우세쪽으로 확실하게 기울게 된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TV로 중계된 발표에서 “존 로버츠는 정의의 명분을 위해 그의 전 직업적 생애를 헌신했다”며 “그는 법정에서 입법하지 않을 것이고, 헌법을 충실하게 적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지명 발표 직전까지 여성 후보가 지명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히스패닉계를 의식, 알베르토 곤살레스 법무장관을 지명할 것이라는 예측도 빗나갔다.
부시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중 처음이자 1994년 이래 처음으로 찾아온 종신제 대법관 지명의 기회를 50세의 소장 법관을 낙점하는 데 활용함으로써 법원 보수화의 장기적 포석을 염두에 뒀다는 평가가 따르고 있다.
공화당원과 보수 세력은 즉각 만족을 표시했다. 부시 대통령의 보수적 판사 지명은 자신의 지지 기반에 대한 확실한 보답이었다. 미국의 가장 보수적인 단체 중 하나인 가족연구위원회의 토니 퍼킨스 회장은 성명을 발표, 로버츠 지명자를 “예외적으로 특별한 자질을 갖춘 공정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진보적인 ‘민권지도자회의’의 웨이드 핸더슨 회장은 그를 가장 보수적인 지도자중 한명이라고 평가하면서 “그는 주류에서 벗어난 법관”이라고 공격했다. 양측은 향후 TV 광고전을 통해 찬반 투쟁을 본격화할 전망이다.
해리 리드 민주당 상원 대표는 청문회 전 지명자를 공격할 경우 공화당이 쳐둔 함정에 말릴 것을 우려, 당 소속 의원들에게 신중한 대응을 당부했다.
그러나 존 케리 상원의원은 “로버츠는 오코너가 아니며 백악관이 분명한 신호를 보냈다”며 “항소법원에서의 짧은 경력에서 드러난 그의 사법적 철학에 대해 의문이 많다”며 청문회에서 그의 경력과 판결 성향을 파헤칠 것을 분명히 했다. 로버츠 지명자에 대한 청문은 8월말, 9월초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전통적으로 대법관 지명 발표는 대개 낮 시간에 있었다. 이례적인 저녁 황금시간대 지명 발표에 대해 미국 언론들은 미 중앙정보국(CIA) 비밀요원 신분 누설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된 칼 로브 백악관 비서실 차장으로부터 주의를 돌리기 위한 시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승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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