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학교법 개정안을 놓고 여야가 싸우다가 결국 개정안은 9월 정기국회로 넘어갔다. 여당은 종교계 사학만 개방형 이사제에서 제외키로 하였고, 야당은 공영이사ㆍ감사제를 도입키로 하였다.
얼마 전, 여의도 국회에서 사학 운영에 관한 학술대회가 열렸다. 주제 발표자는 사학 운영 구조의 가장 큰 걸림돌로 학교법인 위주의 운영구조를 지적했다. 하지만 과연 ‘학교법인이 최종 결정권자’라는 것이 사학 운영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 있을까?
미국의 대학 제도는 세계적으로 우수성을 자랑한다. 그 까닭은 첫째, 미국의 경제적인 부가 대학 교육을 강력하게 뒷받침해 주고, 둘째, 비교육 전문가로 구성된 이사회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사립대학 이사회는 정부 관리나 대학 내부인사가 아닌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법률가, 의사, 회계사 등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미국의 사학은 정부의 통제도 내부 구성원들의 통제도 전혀 받지 않는다.
하버드대, 예일대, 프린스턴대 등 세계적 명문 대학은 설립 당시의 헌장에 근거하여 학교법인에게 대학 운영의 주체로서 최고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모든 운영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하버드대의 문리과대학장을 지낸 헨리 로조브스키는 저서 ‘대학, 갈등과 선택’에서 사학 운영의 중요한 원리를 몇 가지 제시하였다.
첫째 원리는 ‘좀더 민주적으로 된다고 해서 모든 것이 더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즉, 과도한 민주주의는 미흡한 민주주의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더욱 민주적으로 된다고 해서 모든 것이 더 나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둘째 원리는 ‘국민의 시민권과 임의의 조직에 자발적으로 참여함으로써 획득하게 되는 권리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즉, 모든 집단이 동등한 권리를 가져서는 안되며, 집단에 따라서는 필연적으로 제한이 가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보다 오랜 민주주의 역사를 가진 나라의 명문대학 학장이 주는 경험적 메시지를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지금은 최고의 시간이면서 최악의 시간이고, 지혜의 시대이면서 어리석음의 시대이고, 믿음의 시대이면서 불신의 시대이고, 밝음의 시대이면서 어둠의 시대이며, 희망의 봄인 동시에 절망의 겨울이다.”
마치 오늘날 한국 사학의 현실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는 듯하다.
백형찬 서울예술대 교수ㆍ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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