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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 전쟁 그리고 인간] (17) 파도를 헤치고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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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 전쟁 그리고 인간] (17) 파도를 헤치고⑨

입력
2005.07.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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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마라(tamara)> 1997년 2월. 체코의 프라하는 무척 추웠다. 허름한 사무실에서 필자와 마주 앉은 그들 두 사람은 좀처럼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스메타나’가 작곡한 교향곡 ‘몰다우’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스메타나가 사랑한 조국 체코를 화제로 삼아 말을 건네자 그들의 말문이 조금씩 터지기 시작했다. 두 시간 가까이 대화를 나눈 후에야 겨우 기초적 자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필자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타마라 자료를 입수했다.

레이더는 발사한 빔이 어떤 물체에 반사돼 되돌아온 것을 분석하여 목표물을 탐지한다. 그런데 스텔스기는 그 레이더 빔을 흡수하거나 다른 각도로 반사한다. 당연히 레이더에는 목표물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스텔스기는 어떤 장비로도 탐지할 수 없다고 알려졌다. 사실인가? 아니다. 체코의 테슬라 파두비체(Tesla-Paduvice)사가 개발한 레이더 타마라(Tamara)가 있다. 타마라는 빔을 발사하지 않고 목표물에서 발생하는 각종 전자파를 오직 수신만하여 분석하는 수동형(Passive) 레이더이다. 타마라가 F117이나 B-2 같은 스텔스 폭격기도 탐지해낸다고 알려졌다.

필자가 타마라 관련 자료를 입수한지 2년이 지난 1999년 봄, 세르비아가 제3국을 통해 타마라를 입수하여 운영하고 있다는 기사가 군사 뉴스 망에 떴다. 그리고 1주일 가량 후 미국의 F-117A 스텔스 폭격기가 작전 중 세르비아에서 격추됐다. 전세계의 신문과 텔레비전에 뉴스에 그 잔해 사진이 등장했다.

기체 결함에 의한 추락사고라고 주장하던 미국도 결국 이 폭격기가 작전지역에 진입한 후부터 알 수 없는 레이더에 의해 추적됐다고 시인했다. 곧 이어 러시아 국방장관은 모종의 지상레이더가 스텔스기를 탐지했고 이를 격추한 무기는 러시아제 SA-6 이동식 대공 미사일이었다고 밝히며 타마라를 암시했다. 필자는 남다른 감회로 타마라의 위력을 실감했다.

현재, 체코는 타마라의 후속 모델 베라(Vera)를 개발하여 판매 중인데 이것도 역시 스텔스기를 탐지할 수 있다고 알려졌다. 미국이 이 장비를 구매해 분석중이다. 체코의 국방장관이 지난 6월 28일 밝힌 바에 따르면 에스토니아에도 공급된다.

눈을 한반도로 돌려보자. 북한이 구축한 지하견고표적을 파괴하기에는 육상공격용 순항미사일은 속도가 너무 느려 필요한 관통력을 얻을 수 없다. 따라서 항공기에서 발사하는 지하견고표적관통파괴용 벙커버스터탄이나 현재 검토하고 있는 소형 핵폭탄을 사용할 수 밖에 없다. 이런 무기를 운반하여 목표 지점에 투하하려면 전폭기, 특히 스텔스 기능을 갖춘 전폭기가 필수적이다. 그 스텔스기를 탐지할 수 있는 타마라에 대해 전세계 여러 나라들이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당연히 북한도 이 장비에 관심이 많았다.

아무리 최신 초정밀 무기체계라도 원시적으로 보이는 간단한 무기로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오묘하다. 그것이 이른바 비대칭무기(非對稱武器)이다. 우리가 생활을 통해 터득한 진리, 오행상극(五行相剋). 그것이 바로 일상에서의 비대칭이다. 21세기 전반부 20년간 패권경쟁이 첨예하게 전개될 것이다. 이런 때, 비대칭 전략은 국가생존 전략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역사의 아이러니>

지난 7월1일, 중국의 후진 타오 국가주석과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모스크바에서 ‘21세기의 새로운 세계질서에 관한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그 공동선언 뒤에 숨겨진 메시지는 마치 고수(高手)들끼리 주고 받는 선문답(禪問答) 같다. 핵심은 북한에 대한 미국의 무력 행사 계획, 점점 강화되는 대 중국 압박에 대한 경고이다. 중요한 내용을 살펴보자.

첫째, 국제분쟁과 세계적 문제는 유엔의 권능아래 국제법에 따라 평화적으로 해결하자는 것이다. 일방주의적 판단으로 예방전쟁을 벌이는 미국의 패권주의에 제동을 거는 것이다. 유엔의 승인 없이 제2차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미국이 북한에 대해 무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사전에 견제하는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둘째, 국가간의 주권과 영토에 대한 상호존중, 내정불간섭, 평등과 호혜적 관계, 상호불가침 그리고 평화공존원칙을 엄격하게 따를 것을 주장했다. 인권과 민주주의가 인류적 보편 타당한 가치라면서 이 가치의 확산과 수호를 위해 다른 나라의 내정과 소수민족 문제까지 거침없이 개입하고 심지어 정권의 교체마저 시도하는 미국에 대해 그런 행위를 중단하라는 요구이다. 미국 내부와 다른 나라에 대한 이중적 기준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셋째, 국제 사회에 존재하는 문화와 문명의 다양성은 국가간에 분쟁의 원인이 아니라 그 다양성으로부터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원천이 되어야 한다는 선언이 특히 눈에 띈다. 문명의 충돌을 뛰어넘자는 제안이다. 서양문명의 우월성만 강조하고 서양이 믿는 가치체계를 우선시하여 모든 국가가 이를 따르도록 일방적으로 강제하지 말고 서로 다른 문명간의 공존과 존중을 선언으로 밝혔다.

그 외에 미국이 추진하는 우주의 무장화(武裝化)에 반대하여 우주의 평화적 이용을 촉구하고, 핵실험을 전면적으로 금지하고, 핵무기 생물무기 화학무기와 그 운반수단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일반적이며 효과적 조치를 취하자고 강조했다.

테러에 대한 미국의 이중적 기준을 철폐할 것도 촉구하였다. 미국의 우월주의, 일방주의, 미국 예외주의에 의한 이중 기준을 반대한다는 것이다. 금년 8월 황해 지역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대규모 합동 군사 훈련을 실시하기로 했다. 미국에 대한 힘의 시위다.

도덕적, 윤리적 우월성을 바탕으로 서방 진영이 공산 진영을 압박하던 냉전시절, 그 때는 미국과 동맹국들이 종종 이런 선언문을 발표했었다. 이제 국제환경이 바뀌어 과거 공산진영의 두 강대국의 입에서 이런 선언이 발표됐다. 중국과 러시아가 유엔을 통한 분쟁의 평화적 해결, 국가의 주권과 영토에 대한 존중을 촉구하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보게 된다.

<군비통제와 6자 회담>

서양의 손자 병법이라 불리는 ‘전쟁론’. 클라우제비츠는 이 책에서 전쟁은 상대 국가를 무장해제하고 나의 뜻에 따르도록 만든다고 밝혔다. 오늘날에는 상대국이 먼저 무장을 해제하고 패권 국가의 뜻에 따르도록 자발적 동의를 유도하거나 강제한다. 상대국이 따르지 않으면 전쟁이라는 물리력을 통해 강제적으로 이를 실현한다. 패권 국가가 설정한 규칙과 제도를 모든 나라들이 따라야 한다. 그런 세상이 되었다.

군비통제가 그러한 규칙과 제도 중 하나다. 이것은 서양의 개념이고 서양의 목표라고 새무엘 헌팅턴 교수는 밝혔다. 서양국가들의 이익이 위협받을 정도로 비 서양국가가 군사력을 구축하지 못하도록 관리하자는 것, 그것이 냉전 이후 사용되는 군비통제의 개념이다.

서양은 이런 군비통제를 전세계적인 목표로 설정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국제적 협약과 국제기구를 조직한다. 그리고 그 협약에 의한 사찰, 경제적 압력, 무기나 군사기술의 이전을 통제하여 이를 달성하려 한다. 통제의 마지막 강제 수단이 전쟁이다. 군비통제의 내용과 방법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서양국가와 비 서양국가 사이에 태생적 갈등과 분쟁이 내재할 수 밖에 없다.

비 서양 국가들은 핵무기, 생물 및 화학무기, 미사일이 서양의 월등한 통상전력(通常戰力)에 대하여 균형자(均衡者)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이른바 비대칭 전력으로 군사력의 균형을 이루려는 것이다. 비 서양 국가들은 자기들의 안보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무기도 획득하여 배치할 권한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나라도 주변국의 군비강화를 환영하지 않는다. 그것이 자국의 안보에 위협이 되거나, 지역 군비경쟁의 시발점이 된다면 더욱 적극적으로 막기 위해 애쓸 것이다. 같은 문명권에 속한 동맹국 중국과 북한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이 북한의 핵무장에 대해 명백하게 반대의 의사를 밝히고 국제사회에 동조하여 북한을 압박하는 이유이다.

북한 핵 문제는 문명권간의 중요한 이해관계가 서로 얽힌데다 미국-중국 패권 경쟁의 탐색전 성격까지 띠고 있다. 따라서 이제 곧 열리게 될 6자회담에는 서로 합의할 수 있는 결론에 이르는 멀고도 긴 여정과, 그 결과를 제도화할 과정에 우여곡절과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그 모든 것을 극복한다 해도, 궁극적으로는 서로 이해하려 하지 않는 두 문명권의 인식을 가깝게 접근시켜야 하는 문명사적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북한에서 핵무기만 제거되면 동아시아에 평화와 안정과 번영이 올 것인가? 그렇지 않다. 이 지역의 국가들은 앞으로 살펴보려는 것처럼 미국이 앞세우는 압도적 군사력을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인다. 무언가 새로운 비대칭 전력을 군사력의 균형자로 삼으려는 이 지역 국가들의 끊임 없는 본능적 의지가 강렬하다.

6자회담은 동아시아가 가야 할 멀고 험난한 길의 첫 걸음일 뿐이다. 더욱이 그 과정과 전개될 상황이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렵다.

윤석철객원 기자 ysc@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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