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인 1934년 서울 명동의 미츠코시 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 본점)에서 프랑스인 판화가의 전시회가 있었다. 폴 자쿨레(1896~1960)라는 그는 프랑스인 생부가 작고한 뒤 경성제대의 일본인 교수와 재혼한 프랑스인 어머니를 만나러 자주 한국을 찾으면서, 한국을 소재로 한 작품을 많이 만들었다.
도쿄 외국어대 불어과 교수가 된 생부를 따라 일본에 온 뒤 줄곧 그곳에서 작품활동을 하던 자쿨레씨는 전남 영암에서 건너온 나영환(92)씨를 조수로 맞아 함께 일했고, 후에 나씨의 동생 용환(85)씨도 합류했다. 독신으로 자녀가 없었던 자쿨레씨는 49년 양녀로 맞은 나씨의 딸에게 모든 작품과 저작권을 물려주었다.
바로 그 양녀인 재일동포 2세 나성순(테레즈 나 자클레.58.금속공예가)씨가 20일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 자클레씨의 목판화 109점을 기증했다. 일본 고유의 목판화 ‘우키요에(浮世繪)’풍으로 한국 중국 일본 미크로네시아 등의 풍습을 다룬 다색 목판화 작품들이다.
이 중 37점은 1930∼50년대 한국을 소재로 삼고 있다. 돌을 맞아 색동옷을 입고 있는 아이, 젖가슴을 반쯤 드러내고 바느질을 하는 아낙네와 아들의 편지를 읽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 등이다. 나씨는 “양부의 작품을 그분이 그토록 사랑한 한국에 남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자쿨레씨는 최근 서구 미술계에서 서양인으로서 아시아의 그림 재료로 아시아를 묘사한 작가들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면서 가장 주목 받고있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스케치, 판화 등 그가 남긴 2,000여 점의 작품들은 모두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담고 있다. 2003년 일본 요코하마미술관은 그의 특별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중앙박물관은 한불수교 120주년인 내년에 이번에 기증받은 작품을 포함, 폴 자쿨레 특별전을 열 계획이다.
남경욱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