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의 요즘 최대 화두는 디자인이다.
삼성의 경영혁신을 주도해 온 이건희 회장은 기회가 닿을 때마다 디자인의 의미와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국민소득 2만 달러에 도달하려면 최고 경영진은 물론 현장 사원까지 디자인에 관계되는 분야에서 100점짜리 지식을 갖춰야 한다”며 임직원들을 독려하고 있다. 그 동안 우수 제품을 개발, 제품 경쟁력 만으로 국민소득 1만 달러에 도달했다면 앞으로는 삼성이 디자인 경쟁력을 선도해 2만 달러 시대를 열자는 메시지다.
디자인에 대한 삼성과 이 회장의 열정은 밀라노 전략회의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회장은 올해 4월 세계적 명품의 격전지인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전략회의를 주재하며 ‘월드 프리미엄 브랜드’로의 도약을 선언했다.
이 회장은 “세계 일류인 애니콜을 제외하고는 삼성의 평균 디자인 경쟁력은 1.5류에 머물고 있다”며 특유의 위기 의식을 고취시킨 뒤 디자인 부문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를 예고했다. 그는 또 “스탠드 얼론(stand alone), 즉 개별 제품의 디자인 이미지 구축은 성공했지만 모든 전자 제품의 복합화가 진행되는 만큼 토털(종합) 디자인 역량 강화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은 누가 봐도 한눈에 삼성 제품임을 알 수 있도록 고유의 철학과 혼이 담긴 독창적인 디자인을 개발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진열대에서 특정 제품이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시간은 0.6초에 불과한 만큼 이 짧은 시간에 고객의 눈길을 끌어야 마케팅 전쟁에서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은 또 국적과 성별 등을 가리지 않고 디자인 트렌드를 주도할 천재급 인력 확보와 함께 기존 인력들의 역량 강화에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 정보통신 총괄 부문은 내년까지 200명 이상의 인력을 확보, 디자인의 고급화ㆍ차별화 전략을 통해 세계 최고의 휴대폰을 만든다는 청사진을 마련했다.
삼성 ‘디자인 혁명’의 역사는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 회장은 “디자인 개혁을 이루지 않으면 삼성에 성장은 있을 수 없다”는 보고서를 접한 뒤 곧바로 ‘디자인 혁명의 해’를 선언했다. 삼성 디자인의 문제점을 낱낱이 기록한 이 보고서는 삼성의 디자인 고문을 지낸 후쿠다 시게오씨가 작성해 이 회장에게 직접 전달했다.
삼성은 이후 96년 650명 수준이던 디자인 인력을 1,000명 이상으로 확충하는 한편 해마다 우수 디자이너를 선발해 ‘삼성인 상’을 주는 등 전문 인력 양성에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 결과 삼성은 지난 5년간 세계 양대 디자인 상으로 불리는 미국의 ‘IDEA’상과 독일의 ‘iF’ 상 등 각종 디자인 상을 100개 이상 받았다.
삼성 관계자는 “삼성의 브랜드 가치는 125억 달러로 세계 21위 수준”이라며 “이를 2010년까지 700억 달러로 늘리고, 최고 선진 글로벌 기업 수준에 다가가도록 고도의 디자인 경쟁력을 갖출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종수기자 jslee@hk.co.kr
■ 삼성전자 디자인경영센터
삼성전자의 ‘대박상품’은 어김없이 ‘특출난 외모’를 가지고 있다.
기발하고 세련된 디자인은 상품의 매출을 증가시키는 동시에 삼성이라는 브랜드의 가치를 높인다. 또 시장의 제품 트렌드를 바꿔 놓을 정도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디자인 히트’는 디자인경영센터에서 잉태되고 있다.
2002년 5월 출시 이후 일명 ‘이건희폰’이라 불리며 세계 휴대폰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킨 ‘T100’은 작고 얇은 휴대폰이 주류이던 당시에 넓고 사용하기 편한 컨셉으로 휴대폰 시장의 트렌드를 바꿔 놓았다. 비기계적인 컬러와 질감, 감성코드를 통해 고감각 디자인으로 인정받으면서 단일 모델로 1,000만대 이상의 판매를 기록했고 매출 3조원, 이익 1조원을 달성한 디자인경영(Design-drive Business)의 대표 사례로 꼽히고 있다.
외장 안테나를 제거한 ‘벤츠폰’(E700), 지난해 11월 출시돼 8개월만에 500만개나 팔린 ‘블루블랙폰’(SGH-D500)은 삼성전자의 디자인 성공사를 이어가고 있는 모델들이다. 세련된 디자인에 다양한 첨단 기능을 갖춘 블루블랙폰은 지난 2월 유럽통화방식(GSM) 협회가 주는 ‘올해 최고제품상’을 수상한 데 이어 영국 휴대폰유통협회의 ‘최고 소비자 휴대폰상’, 스위스 최대 유통업체 모바일존이 주는 ‘베스트 카메라폰상’ 등을 휩쓸며 유럽시장에서 삼성전자 휴대폰이 노키아에 이어 확고한 2위 자리를 구축하는데 기여했다.
삼성전자의 패션 노트북 ‘센스 Q30’은 지난해 12월 출시 이후 월 평균 3,000대가 팔리면서 서브노트북 시장 규모 자체를 2배 이상 키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T’자형 구조로 심플함과 슬림을 강조해 미국 TV시장을 석권한 DLP 프로젝션TV와 디지털 캠코더, 디지털 카메라, MP3 플레이어, 보이스레코더, PC카메라, 휴대용 메모리 등 6가지 생활 디지털 기기의 기능을 내장하고도 신용카드 만한 크기의 캠코더 ‘미니캣’도 삼성의 브랜드를 업그레이드시킨 대표적인 디자인 제품이다.
삼성전자 디자인의 저력은 디자인경영센터에서 나오고 있다. 2001년 윤종용 부회장 직속 조직으로 설립된 센터에는 현재 470여명의 디자이너들이 근무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5년 동안 미국 산업디자이너협회(IDSA)와 비즈니스위크가 주관하는 IDEA 디자인상에서 19개 제품이 수상하면서 디자인 기업 부문 세계 1위에 올랐다. 또 9,700여건의 디자인 지적재산권을 확보해 지난해 디자인경영 최우수기업으로 선정됐다.
디자인경영센터의 성공 비결은 미국, 영국, 일본, 중국 등 해외연구소를 별도로 운영하면서현지 정서를 감안하는 글로벌 디자인에 있다. 여기에 대학생을 뽑아 교육을 시키는 디자인 멤버십, 사내 디자인 학교인 IDS, 매년 10~20명의 디자이너를 선발해 해외에서 1~3년간 최신 디자인 동향을 연구하는 파워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디자인은 이미 매출 신장과 브랜드 이미지 제고 등에 중추적 역할을 하는 경영의 핵심코드가 됐다”고 말했다.
김동국기자 dkkim@hk.co.kr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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