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대륙을 처음 발견한 것은 콜럼버스가 아니라 명대(明代)의 항해가 정화(鄭和)다.” 영국 해군출신 역사학자 개빈 멘지스는 2002년 ‘1421년, 중국이 세계를 발견하다’라는 저서에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는 콜럼버스 항해 이전 아메리카 대륙을 표시한 지도가 등장했고, 정화부대가 남긴 선박의 잔해와 표석 등이 남아있다는 것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정화는 1405년부터 28년 동안 수백 척의 선단을 이끌고 동남아 중동 아프리카 등 세계 30여 개국을 탐험하며 ‘바다의 비단길’을 개척한 해양 영웅인 것만은 틀림없다.
△중국이 정화의 남해 대원정 60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축제열기에 휩싸였다. 선박ㆍ유물전시와 기념우표, 기념주화 발매, 학술회의 등 7월 내내 떠들썩하다. 권력 투쟁으로 500년 가까이 잊혀져 있던 정화를 되살려 낸 것은 청말 개혁가인 량치차오(梁啓超)다. 외세의 침략에 스러져가는 중국의 기상을 다시 세울 모델로 택한 것이다.
덩샤오핑(登小平)은 “정화가 있을 때만 해도 중국은 개방적이었다”며 개혁ㆍ개방정책을 뒷받침했다. 그리고 후진타오(湖錦濤) 시대를 맞은 지금 ‘영웅 만들기’가 거국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해신(海神) 열풍은 중국뿐이 아니다. 영국에서는 트라팔가르 해전 승리 200주년이자 넬슨 제독 서거 200주년을 기리는 행사가 한창이다. 넬슨은 프랑스와의 전투 중에 눈을, 스페인과의 싸움에서 팔을 잃은 데 이어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목숨마저 조국에 바쳤다.
일본에서도 세계 5대 해전 가운데 하나인 쓰시마해전 승전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얼마 전 열렸다. 쓰시마 해전에서 승리한 뒤 군신(軍神)으로까지 추앙 받은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朗) 제독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각 국의 움직임은 해양강국으로 발돋움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세계를 지배한 나라는 바다를 장악했다. 지금도 강국들은 앞 다퉈 바다를 개발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우리가 해상왕 장보고에 주목하고, 충무공 탄신 460주년을 맞아 추모열기가 고조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육로는 봉쇄돼 있고 3면이 바다에 둘러싸인 지리적 위치는 해양국가로서의 성장을 필연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1,200년 전 청해진을 중심으로 동북아의 해상 교역로를 지배했던 ‘장보고의 영광’을 되살릴 수 있을 것인가.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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