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18일 칼 로브 백악관 비서실 차장의 중앙정보국(CIA) 비밀요원 신분 누설 연루에 관한 질문을 받고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누구든지 지금 정부에서 일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대답은 리크게이트 연루자에 대한 처리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로브 차장을 계속 신임할지 아니면 해임할지의 판단기준을 ‘범죄 성립 여부’에 두겠다는 뜻이다. 로브 차장이 누설자로 알려진 뒤 그가 “조사 완료된 뒤 이야기하겠다”고 말한 것과 비교하면 입장 이 보다 명료해진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범죄 성립 여부로 로브 차장의 해임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그의 언급엔 복선이 깔려 있다. 미국 언론들은 특별 검사가 로브 차장을 기소할만한 범죄를 찾아내지 않는 한 자신의 심복을 내치는 일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으로 해석했다. 윤리적 책임론만을 제기하는 정치적 공세에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민주당은 즉각 부시 대통령이 윤리적 기준을 낮췄다고 공격했다. 민주당 하원 대표인 해리 리드 의원은 “이것은 미국 대통령의 신뢰성에 관한 문제”라며 “1년 전 미묘한 정보 사항을 흘린 데 관여한 사람은 해임할 것이라고 하더니 이제 입장을 바꾸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로브에게 1982년 제정된 정보요원보호법을 적용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로브는 타임의 매튜 쿠퍼 기자에게 CIA 요원 발레리 플레임의 이름과 그녀가 비밀요원이라는 사실을 직접 거론하지 않았다.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다고 해서 죄가 성립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이 법의 처벌 조항을 적용하려면 정부가 비밀 요원의 신상을 감추려 하는 점을 알고도 이름을 공개했다는 고의성까지 입증해야 한다. 또 신분 보호 대상자가 최근 5년간 해외에서 일했던 경우로 제한하고 있는데 플레임은 1997년 이후 미국에서 거주해왔다.
부시 대통령은 또 다른 빅 카드를 쥐고 있다. 은퇴 의사를 표명한 샌드라 데이 오코너 대법관 후임자의 지명 발표를 서두르는 것이다. 로이터 통신은 공화당 전략가의 말을 인용, 이르면 19일 중에도 지명 발표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부시 대통령은 18일 “몇몇 후보자들과는 이미 같이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그들을 다시 면접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이 논란의 대상이 되는 인물을 대법관에 지명할 경우 정국은 빠르게 ‘인준 전쟁’으로 옮겨지고 리크 사건은 관심의 우선 순위에서 밀려날 수 있다. 로이터 통신은 부시 대통령이 로브 차장으로부터 주제를 바꾸기 위해 대법관 지명 발표를 활용할 가능성을 제기했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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