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크게이트’의 발단은 이탈리아 정보기관 등이 아프리카의 니제르에서 이라크의 핵 관련 첩보를 입수한 2001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사담 후세인 정권이 핵무기 제조를 위해 우라늄 농축이 가능한, ‘옐로케이크’로 불리는 정제 우라늄광을 구입하려 했다는 것이었다.
미 중앙정보국(CIA)은 2002년 2월 첩보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조지프 윌슨 전 이라크 대사를 니제르에 비밀리에 파견했다. 이라크 전쟁이 터지기 1년 전의 일이다. 윌슨은 8일간의 현지 조사를 마친 뒤 정보가 허위라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이라크전의 명분을 찾던 미 정부는 달가워 하지 않았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003년 1월 국정연설에서 윌슨의 보고를 무시하고 영국의 정보라면서 ‘이라크-아프리카 우라늄 커넥션’의혹을 공식 언급했다.
그러자 같은 해 6월 뉴욕 타임스에 니제르 조사 내용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윌슨의 제보였다. 윌슨은 이어 7월 뉴욕 타임스에 직접 기고한 칼럼에서 “이라크 핵무기 프로그램과 관련된 정보의 일부는 이라크의 위험을 강조하기 위해 왜곡됐다”고 폭로했다.
일주일 뒤 보수적 칼럼니스트 로버트 노박은 같은 신문의 칼럼에서 윌슨의 부인이 CIA 비밀요원인 발레리 플레임이라고 또 다른 폭로를 했다. 정보의 진위를 놓고 다투던 양측이 리크(누설)에 리크로 맞선 형국이 됐다.
법무부는 ‘정보기관신원보호법’에 의거, 특별검사를 임명해 수사에 착수했다. 그 결과 플레임의 신원을 기사화한 타임지의 매튜 쿠퍼기자, 기사화하지 않았지만 취재를 하고 노박에게 알려준 혐의로 뉴욕타임스의 주디스 밀러기자가 법원에서 취재원 공개 결정을 받았다.
타임 지는 법원결정에 순종해 기자의 수첩과 이메일 기록을 모두 내놓았고, 뉴욕타임스는 ‘시민불복종의 권리’를 내세워 항거했다. 사건은 한동안 언론의 자유 문제에 초점을 맞춰 진행되는 듯했다.
그러나 쿠퍼의 취재원이 당대의 최고실세 칼 로브 백악관 비서실차장이라는 증언이 나오면서 사건은 정권 핵심이 연루된 본격적인 정치스캔들로 비화했다.
문향란 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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