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할 거야, 말 거야? 이거 다 돈 벌자고 하는 짓이야. 나, 다음 타임 밀렸어. 시간이 돈이거든.” 한 10대 소녀가 어떤 중년 남자에게 내던진 말이다. 속사포처럼 이어지는 다음 말. “빨리 빨리 하고 들어가야 집에서도 의심 안 한다고.” 고교 다니는 둘째딸의 원조 교제 현장이다.
극단 차이무가 창단 10년을 맞아 특유의 풍자와 해학의 도를 한껏 높인 ‘가화만사성’을 공연한다. 1남 2녀를 둔, 겉보기에는 멀쩡한 50대 부부의 가정에서 펼쳐지는, 지극히 일상적 풍경이다.
작가 지이선은 매우 즉물적인 방식을 택했다. 이들이 주고 받는 대화에 가득한 비속어와 쌍말은 그들의 자연스런 일상이면서, 조금만 돌이켜 보면 바로 우리가 매일 주고 받는 언어인지 모른다.
엄마가 나가는 증권 회사 객장, 장남의 운전 면허 시험장, 장녀의 취업 면접장 등이 교묘히 병치되면서 무대는 21세기 한국인들이 가정이 해체된 모습을 통렬히 시각화한다. 아버지의 원조 교제 현장이 틈입하는 것이 바로 이 대목이다. 원조 교제를 하고 나오는 아버지를 딸이 맞닥뜨리는 순간은 아찔하다.
그 와중에도 그는 말한다. “너, 이번 시험 잘 봤어?” “아, 몰라. 나중에 (성적표) 오면 보여 주면 될 것 아냐. 아빠, 넥타이랑 옷이 왜 그 모양이야? 아빠도 술집서 아가씨랑 술 마시고 그래?”
컴퓨터를 잘 못 다루는 아빠는 후배에게 밀려 명퇴해야 했고, 그 퇴직금으로 아내는 주식에 미쳤다. 집안의 강요로 적성에도 안 맞는 의대로 진학한 아들은 포르노나 뒤지고, 첫째 딸은 몸매 때문에 취직 못 한다며 식구들 피를 말린다. 이들의 행색은 막가파가 무색할 정도다.
서로를 극도로 불신한다. 20대 중반이 된 장녀의 일기를 보자. ‘내가 오빠 방문을 벌컥 열었더니 컴퓨터에 여자가 옷 벗고 누워 있는 포르노 사진이 떠 있고 오빠 얼굴은 존나 벌겠다(매우 불그레했다).’
‘비언소’, ‘통일 익스프레스’, ‘늘근 도둑 이야기’, ‘조통면옥’ 등 한국의 현실을 웃음과 함께 풍자해 온 극단이 특유의 장기를 유감 없이 발휘한다. 이성호 연출, 서동갑 민성욱 등 출연. 27~8월 3일 국립극장 별오름극장 월~목 오후 7시 30분, 금~일 오후 4시 7시 30분 (02)747-1010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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