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정운찬 총장이 18일 대한상공회의소 초청 강연 직후 고교평준화 재검토와 2008학년도 대입안 고수 입장을 재차 확인한 것은 다음 달 논술고사 가이드라인 발표를 앞두고 교육인적자원부에 대해 일종의 압력을 가한 것으로 해석된다.
정 총장은 이날 강연 후 질의ㆍ응답에서 “정부의 주장은 100분의5 정도 되는 학생을 잘 가르치면 될 일이지, 왜 100분의1이나 1,000분의1을 데려다 가르치려 하느냐는 것”이라며 “이는 좋은 원자재를 갖고 좋은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 무한경쟁의 지구화 시대에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해 변별력 있는 논술고사 도입이 불가피함을 역설했다.
정 총장은 또 한 참석자가 ‘최근 우수한 학생들이 조기 해외유학을 떠나는 등 공교육의 위기가 심각하다’고 지적하자 “교육의 목적은 가르치는 것 뿐만이 아니라 솎아내는 데도 있다”며 “국가를 위해서도 고교평준화는 재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교육정책의 목표가 사교육 팽창 억제를 위한 평준화가 아니라 국가 차원의 엘리트 양성에 맞춰져야 한다는 정 총장의 평소 지론을 드러낸 것으로 서울대와 당정의 이번 갈등이 교육철학의 근본적인 차이에서 비롯된 것임을 보여준다.
정 총장의 발언으로 한동안 봉합 되는 듯했던 당정과 서울대의 갈등이 다시 재연될 전망이다. 당초 서울대의 2008년도 입시안을 둘러싼 논란은 11일 서울대 최고 심의ㆍ의결기구인 평의원회가 “통합교과형 논술고사가 교육부가 금지한 본고사가 되지 않도록 적극 협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한동안 소강 상태에 접어 들었다.
그러나 이날 정 총장이 “고교평준화를 문제삼고, 통합교과형 논술고사 실시 등 입시안에 관한 서울대의 방침이 후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으면서 정부도 조만간 입장 표명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번 발언은 노무현 대통령이 14일 대학교육협의회 회장단과의 간담회에서 3불(不)정책(본고사ㆍ기여입학제ㆍ고교등급제 금지)의 불가피성을 역설한 직후 나온 것이어서 이 문제를 다시 이슈화하겠다는 정 총장의 의도도 엿보인다.
전성철기자 for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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