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후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외국인 노동자 전용 의원’ 중환자실. 재중동포 노동자 A(36)씨가 이 병원 대표 격인 김해성(45) 목사를 붙잡고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A씨는 두 달 전 경기 안산에서 외국인 불법 노동자 단속반을 피해 건물 2층에서 뛰어내리다 정강이 뼈가 으스러졌다. 가까스로 단속은 피했지만 금이 간 다리는 사정없이 퉁퉁 부어 올랐다. 불법 체류자 신분인데다 수술비도 없어 나흘 동안 방안에서 끙끙 앓았다.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병원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땐 구세주를 만난 것 같았어요….”
외국인 노동자 전용 의원이 22일로 개원 1주년을 맞는다. 의료 사각 지대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지난해 7월 첫 발을 내디딘 이래 지금까지 1만3,000여 명이 다녀갔다.
이 병원을 만든 김해성 외국인노동자의집 대표는 “합법불법을 따지기 전에 사람부터 살려야지요”라며 말문을 열었다. “10년 넘게 외국인 노동자들을 돕다 보니 제가 처리한 시신만 1,200구가 넘습니다. 간단한 질병인데 단속이 무서워 병을 키우거나 병원비가 없어 죽음에 이르는 안타까운 경우가 많았지요.”
단속 걱정 없이 마음 놓고 무료로 치료받을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이곳을 찾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갈수록 늘고 있다. 요즘은 하루 평균 50∼100명이 찾고 있다.
병상 30개로 출발한 의원은 중환자실, 회복실을 추가한 데 이어 최근에는 근처 대방동에 집 3채를 구해 무료 숙식을 위한 쉼터도 꾸며 놓았다. 진료 과목도 내과 정형외과 치과 안과 산부인가 정신과 등 종합병원 못지않다. 김 목사는 “전공의협의회, 고려대 구로병원팀, 열린치과의사회, 청년한의사회 등 다양한 전공의 자원봉사자 130여 명이 평일 야간은 물론, 주말에도 나와 연중 무휴로 진료를 하고 있습니다. 통역을 도맡아 해 주는 나라별 자원봉사자와 이름 모를 개인 후원자, 간호사들의 도움도 큰 힘이 되고 있지요”라고 설명했다.
현재 이 병원에는 서울 방배동에서 수십 년간 운영하던 병원을 팔아 돈을 보태고 참여한 이완주(62) 원장을 비롯해 의사 7명이 상근하고 있다.
하지만 후원금과 주위의 관심은 갈수록 줄고 있다. 김 목사는 “모든 진료가 무료이다 보니 경영 적자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어요”라며 “이제는 정부가 불법 체류자를 위한 기관이라는 이유로 외면만 할 것이 아니라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지원을 고려해야 할 시점입니다”라고 말했다.
김 목사는 1980년 경기 성남 주민교회 전도사로 빈민ㆍ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이후 목사가 된 뒤에도 노동상담소, 외국인노동자의 집, 중국동포의 집 등을 운영하며 외국인 노동자 인권 보호 운동을 하고 있다. “이국 땅에서 갈 곳 없이 병들고 죽어가는 이들을 보살피는 일은 저희들 힘만으로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짐입니다. 정부나 시민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가져 주시기 바랍니다.”
후원은 외국인노동자·중국동포의 집 홈페이지(www.g4w.net)나 전화(02_863_6622)로 문의하면 된다.
김명수 기자 lece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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