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ㆍ17 정동영 통일부장관과의 면담 이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실용주의적 결단이 숨가쁘게 이어지고 있다. 김 위원장이 16일 현정은 현대 회장을 만나 8월 중 백두산ㆍ개성 시범관광 실시를 약속한 것이 북한 전면 개방에 대비한 사전포석 아니냐는 분석까지 제기될 정도다.
6ㆍ17 면담 이후 장관급, 경제협력추진위원회 등 2차례의 남북회담 뿐만 아니라 9일 6자회담 복귀 결정까지 김 위원장은 묵은 숙제를 단숨에 풀어가고 있다.
특히 12일 끝난 10차 남북 경추위 회의에서 북한 내 천연자원 공동개발, 경공업 지원에 합의한 데 이어 이번에 백두산ㆍ개성 시범관광 실시까지 약속한 것은 심상치 않다. 과거 신의주, 나진ㆍ선봉지구 개발에 외국계 자본을 끌어들였던 전례와도 180도 다른 상황이다.
이 같은 행보에는 새로운 남북 경제협력모델 창출로 중국식 개방으로 가겠다는 뜻도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02년 7ㆍ1 경제관리개선조치를 통한 경제개혁정책 실패 이후 북한으로서는 신(新)사업 창출을 통한 개방정책이 마지막 돌파구라고 판단했을 가능성도 있다.
백두산 관광이 성사되면 부수적인 개방효과도 기대된다. 백두산 관광은 시간, 거리상 항공편을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백두산 인근 삼지연 공항 활주로 상태가 열악해 평양 순안공항을 경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경우 남측 관광객의 평양-백두산 연계관광도 가능할 전망이다. 북한의 심장부인 평양이 남측에 부분적으로 개방되는 것은 개성, 금강산 개방과 비교할 바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정부는 이미 북핵 문제 해결에 대비, 7대 신동력 남북경협사업 등 포괄적 경협을 준비 중이고 백두산관광 활성화도 여기에 포함돼있기 때문에 이번 합의를 적극 환영하고 있다. 하지만 사업을 추진하는 현대가 30대 기업집단에 포함돼 남북협력기금을 지원할 수 없도록 규정돼 있는 만큼 직접적인 자금 지원은 어려워 보인다.
물론 향후 관광사업이 본격화할 경우 삼지연공항 활주로 포장공사 등 인프라 구축 지원에 나설 가능성은 있다. 정부 당국자는 “현대와 김 위원장의 면담 결과를 정확히 파악한 뒤 정부가 도울 수 있는 일은 돕겠지만 기본적으로 민간사업자 중심으로 사업을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상원 기자 ornot@hk.co.kr
■ 현정은 회장 일문일답/ "현대에 독점권 주기로 구두합의"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17일 오전 승용차편으로 강원 고성 남측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도착해 기자들에게 방북 결과에 대해 설명했다.
-김 위원장과 몇 시간이나 만났나.
“16일 오전 11시부터 오후2시30분까지 만났다. 처음에 사진 찍고 단독면담한 뒤 점심은 김윤규 현대아산 부회장 등과 다 같이 했다.”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김 위원장이) 백두산 관광을 내주었다. 백두산에 초대소 20동이 지어져 있는데 숙박에 필요하지 않겠느냐며 그것도 무료로 주겠다고 했다. 현대아산에 독점권을 줬다. 우선 시범관광을 하고 이른 시일 내에 시작하라고 했다.”
-서면으로 합의한 것인가.
“구두로 다 이야기 했다.”
-다른 지역 이야기도 나왔나.
“개성관광도 이야기했다. 개성 인근 박연폭포는 8월15일이 연휴니깐 그때 시범관광하라고 했다. 개성시내도 곧 같이 하라는 식으로 이야기 했다. 내금강도 시범관광 해보라고 했다. 구체적으로 정한 것은 없지만 올해 안에 할 것이다.
-백두산 관광사업 계획은.
“검토를 바로 해야 한다. 8월말쯤 시범 관광을 하려 한다.”
-면담은 어떻게 성사됐나.
“금강산에 가 있는 중에 연락이 왔다. 면담 전날 연락 받았다. 남편인 정몽헌 회장에게는 금강산을 내줬는데 내게는 뭘 줄까 생각했다고 했다. 정주영 명예회장과 정몽헌 회장 이야기를 많이 하며 마음이 쓰리다고 했다.”
고성=곽영승 기자 yskwa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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