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박성원씨에게 세상은 엉터리이고, 그 엉터리를 이해하고 인식하는 도구적 이성이나 감각도 도통 믿을 게 못 되는 헛수작인 듯하다.
그는 그 낯설지 않은 이야기를 소설집 ‘우리는 달려간다’(문학과지성사 발행)에서, 다시,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다만 걸리는 점은, 소설에서 말하는 그 ‘엉터리 같은 세상’ 역시 헛된 형이상학적 수작이 낳은 허상일수 있고, 그렇다면 인간은 영구히 허상의 창조자이자 유지관리인으로 남아야 하느냐는 푸념이다.
그러니 이 소설은 그 푸념에 대한 작가의 입장, 혹은 암시를 찾아내는 기분으로 읽어도 좋을 것이다. 물론 그의 기왕의 소설들이 스펙터클한 황비홍식 액션보다는 ‘하나만 죽어라 패는’ 그러면서 패고 맞는 스타일로 승부해왔고, 이번 작품집 역시 그 범주에 들지만, 굳이 ‘이야기’를 찾는다면 그렇다는 것이다.
엉터리와 헛수작에 대한 작가의 시비는 첫 작품 ‘긴급피난-우리는 달려간다 이상한 나라로’서부터 전면적으로 제기된다. 폭설 속에 외진 도로를 달리다 사고를 내고 의식을 잃은 ‘나’는 별장쯤으로 보이는 낯선 집 거실에서 정신을 차린다. 누군가가 자신을 구조한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딴판이다.
그 누군가는 복면강도로, 자신의 혐의를 뒤집어씌우기 위해 ‘나’를 구한 것이다. 반 실성한 집주인의 아내는 ‘나’를 범인으로 확신한다. 범인은 사라졌고, ‘나’의 지문은 온 집안에 찍혀있는 상황. 나는 집에 불을 지른 뒤 도주하기로 한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하게 보다 이성적으로 생각해야만 한다. 나는 매우 합리적인 사람이다.…나의 결정이 곧 진실이다.”(24쪽)
연작으로 읽히는 후편 ‘인타라망’에서 ‘나’는 69일만에 의식불명 상태로 깨어난다. 다시 낯선 집이다. 방화한 뒤 도주하다 발을 헛디뎌 쓰러져 있는 것을, 별장 주인의 아들이 발견해 간호해온 것이다.
남자가 ‘나’를 돌본 건, 나를 통해 범인을 찾기 위해서다. 의식을 회복한 ‘나’는 남자의 정체와 의도를 모른 채 사고 경위를 털어놓고 다시 사형(私刑)의 위기에 처한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설명은 통하지 않는다. ‘나’는 기도하듯 중얼거린다. “신은 있으라. 부디, 부디 신은 있으라”(194쪽)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모든 것’이 참과 거짓의 문제를, ‘꿈 해결사’가 현실과 꿈의 문제를 통해 엉터리들의 세부를 해부한 작품이라면, ‘하늘의 무게’는 그 한계와 초월적 희망을 비교적 명징하게 드러낸 작품인 듯하다.
아내와 별거를 시작하면서 변두리 낡은 아파트에 세를 든 주인공이 옆집 여자의 착각으로 인해 비극적 사연에 얽혀 든다는 내용의 이 작품에서 작가는 계단과 하늘의 이미지를 부각하고 있다.
화가인 주인공에게 계단은 그림의 주요 모티프이기도 하다. “계단이 끝나는 곳은 온통 파란 하늘과 맞닿아 있었다. …오직 보이는 것은 하늘과 땅의 경계였다. 그래서 계단을 올라가면 하늘이 잡힐 정도가 아니라 하늘을 뚫고 지나쳐버려, 빛도 인력도 없는 정지의 세계, 무한하며 무늬도 색깔도 없는 영원한 무지(無地)의 세계로 홀연 사라질 것만 같은 계단이었다.
그가 믿는 것은 하늘 뿐이었다. 인간은 언제나 제멋대로의 잣대로 옳지 못한 감정을 표출하고, 오해하고, 흐느끼고, 또 좋아한다. 그러나 하늘은 그렇지 않다.… 오직 인간만이 서투른 이성으로 판단하여 그렇다고 생각하며, 세상을 그르친다.”(61쪽)
‘서툰 이성’때문이든 이성 자체의 근원적 서? 때문이든 인간은 이미 세상을 그르쳤다는 게 작가의 코스몰로지인 듯하다. 하면, 출구는 있는가.
‘꿈 해결사’의 인물들처럼 ‘비루한 현실세계’를 외면하고 스스로 연출한 행복의 꿈 속으로 빠져들 것인가, 계단 아래 서서 가없이 먼 땅과 하늘의 경계를 우러를 것인가…. 아니면 넋 놓고 신을 찾을 것인가. “수상한 계절이다.”(112쪽)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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