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형사4부(이호원 부장판사)는 15일 간첩활동을 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1984년 무기징역이 확정된 함주명씨(74ㆍ사진)씨에 대한 재심사건에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간첩사건의 재심청구가 받아들여져 무죄가 선고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함씨가 고문으로 인해 허위 자백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북한에 거주하던 함씨는 6ㆍ25전쟁 이후 월남한 가족을 만나기 위해 대남공작원으로 지원, 54년 4월 남파되자 곧바로 자수해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함씨는 30년간 세 자녀를 둔 평범한 가장으로 살아 오다 83년 2월 영문도 모른 채 치안본부 대공분실로 끌려갔고 그 곳에는 ‘고문기술자’ 이근안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부터 잠 안 재우기는 물론, 갖은 고문이 시작됐다. 이씨의 질문에 “아니다” “모른다”고 답하면 여지없이 몽둥이 찜질과 함께 수건이 덮인 얼굴 위로 물이 쏟아졌고, 양쪽 발가락에 전기고문까지 가해졌다. 그러기를 45일. 함씨는 위장귀순 후 30년간 남한의 기밀을 북에 넘긴 고정간첩으로 조작됐다.
이 같은 수사결과는 이듬해 5월 대법원에서도 그대로 받아들여져 무기징역이 선고됐고, 15년 넘게 옥살이를 한 끝에 98년에야 8ㆍ15특사로 풀려났다.
함씨가 간첩 누명을 벗을 수 있게 된 데에는 김근태(현 보건복지부 장관) 고문사건 등으로 10년 넘게 도피생활을 하던 이근안이 99년 자수한 것이 계기가 됐다. 강금실 전 법무장관 등 변호사 13명은 99년 10월 함씨에 대한 고문 혐의 등으로 이씨를 검찰에 고발했고, 검찰은 “이씨가 함씨를 불법 감금한 뒤 고문하고도 법정에서 ‘고문한 적이 없다’고 위증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결정했다. 함씨는 이를 근거로 2000년 9월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2003년 10월에야 이를 받아들였다.
김지성 기자 j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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