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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김기동 화백 유작전 여는 이신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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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김기동 화백 유작전 여는 이신호씨

입력
2005.07.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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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을 땅에 묻으며 약속했습니다. ‘김기동씨, 당신의 이 소중한 그림을 내가 반드시 세상에 알리겠습니다.’ 돌아가신 지 6년 만에 그 약속을 지키는 셈이네요. 이제 하늘에서라도 그이가 환하게 웃을까요….”

동양화가 이신호(55)씨가 남편 김기동(1944~99) 화백의 유작전을 16~20일 서울 서초동 갤러리 호에서 연다. 남다른 화재를 타고났지만 평생 단 한번도 개인전을 갖지 못했던 고인의 명예회복을 위한 전시다.

김기동 화백은 홍익대 회화과에서 수학하고 1960년대 국전과 목우회 공모전에 입선과 특선을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다. ‘국내 화단에서는 보기 드문 초현실적 작품 세계’ 로 호평받았으나 운명은 젊은 작가에게 가혹했다. 80년 37세의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를 당해 식물인간이 됐다. 기적적으로 소생했지만 뇌 손상이 심각한 상태였다.

사고는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갈수록 어린애처럼 되고 우울증으로 대인기피증이 심해졌다. 생계를 아내에게 떠맡기고 있다는 생각에서인지 콤플렉스와 의처증은 광기에 가까웠다. “나는 남편이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는데 남편은 그 시절이 죽음보다 치욕스러웠나 봅니다.”

정신적ㆍ물리적 폭력 속에서도 이씨를 버티게 한 힘은 연애 시절 함께 오른 하얗게 눈 덮인 산의 추억이었다. 산 꼭대기에서 남편이 말없이 따서 건네주었던 풀씨의 아름답고 신비한 모습은 그대로 남편의 모습으로 각인됐다. 이씨의 절절한 사랑은 남편을 다시 그림으로 이끌었다. 84년 서각의 대가 오옥진씨에게 취미 삼아 서각을 배우도록 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때부터 뇌 속 어딘가에서 그림에 대한 열정이 다시 점화된 것 같아요. 대인기피증 때문에 남에게 그림 보여주기를 극도로 꺼렸지만 끊임없이 그리고 또 그렸지요. 돌아가신 뒤 정리해 보니까 600점 이상이 되더군요.”

작고한 해에 열려던 유작전은 오랜 병수발에 지친 이씨가 유방암 판정을 받는 바람에 미뤄졌다. 우여곡절 끝에 2002년 여름 개인전을 열 화랑을 잡았지만 장마로 물난리가 나면서 작품들이 물에 떠내려가 또 연기됐다. 올해 초에야 유방암 완치 판정을 받고 다시 서둘렀다.

“남편은 오로지 그림을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교사 생활이 그림에 지장을 준다 싶으면 가차없이 그만두고 달동네로 들어가 그리고 투병 중에는 병상에 누워 그렸어요. 천진난만하기 그지없었고 세상물정은 전혀 몰랐지요. 그이가 그토록 사랑하던 그림을 세상에 내놓고 ‘이런 화가가 있었다’고 알리는 게 남은 자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전시회는 김 화백의 초현실주의적 작품 38점을 선보인다. 죽음을 예감한 듯 말년에 그린 그림들은 ‘너무 격렬하고 무서워서’ 일부러 뺐다고 한다. 전시장 옆에는 이씨의 작은 개인전 공간도 함께 꾸민다. “제가 옆에 같이 있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전시 문의 (02)588_2987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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