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과일 서리의 묘미는 우리집 마당가에 주렁주렁 매달린 과일을 두고도 한동네 고만만한 것들이 몰려가 남의 집 과일에 손을 대는 재미다. 원래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듯 담 너머로 보이는 과일도 남의 집 과일이 더 굵고 맛있어 보이는 법이다.
우리집 마당가의 살구나무는 참살구가 열려도 맛이 별로인데 남의 집 마당가의 살구나무는 개살구가 열려도 ‘언제 저거 한번 서리해 먹어야 하는데’하고 눈독을 들이게 된다. 서리 공모는 주로 학교 갔다 오는 길에 이루어진다.
지금 철의 서리는 노랗게 익어가는 매실이 제격이다. 지금도 나는 우리집 매실을 두고도 옆 동네 현숙이집 매실 서리를 갔던 날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집은 해마다 청매실을 다섯 멍석 따고 익은 매실 두 멍석을 딴다고 했다.
그런데 그 해는 익은 매실 두 멍석 가운데 열 바가지는 우리가 따왔다. 학교 갔다 오는 길에 식구들 모두 집을 비운 빈 과수밭에 들어가 한창 젖살이 오른 아기 주먹처럼 포동포동한 매실을 저마다 책가방이 터져라 따왔던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배탈이 난 놈이 절반이었는데 그것 역시 해마다의 전통이었다. 그 나무들이 아직 있을까. 지금 추억해도 입안 가득 군침이 돈다.
/소설가 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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