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정말 핵 포기 의사가 있는가. 최근 북핵 문제와 남북관계를 둘러싸고 숨가쁘게 전개되고 있는 상황에 기대가 되면서도 여전히 남는 의문이다. 일부에서는 핵 보유가 김정일 체제 유지의 핵심이기 때문에 김 위원장이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러나 최근의 상황은 김 위원장이 원하든 원치 않든 핵을 포기할 수밖에 없도록 전개되고 있다. 북한의 핵 폐기를 이끌어내기 위한 관련국들의 외교적 노력과 압박도 강력하고 정교해 김 위원장이 기만술로 핵 보유를 관철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핵보유 관철은 어려울듯
우선 미국만이 아니라 남한과 중국의 핵 포기 압박이 강력하다. 남한과 중국은 대북 유화책을 쓰고 있지만 북핵 불용의 입장은 확고하다.
후진타오 국가주석 등 중국의 4세대 지도부는 북한의 체제안전 보장 요구에는 이해를 표시하면서도 핵 보유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최근 후 주석의 특사인 탕자쉬안 국무위원의 평양 방문에서도 중국 지도부의 이런 입장이 잘 드러났다.
이런 점에서는 남한도 중국과 입장이 비슷하다. 우리 정부는 6ㆍ10 한미정상회담 이후 매우 자신 있게 대북 유인책을 펴고 있다. 조지 W 부시 미 정부의 양해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는 비록 발표는 되지 않았지만 한미정상 간에 북한이 핵 폐기 협상에 진지하게 임하지 않을 때 남한도 대북 제재에 동의한다는 합의가 이뤄졌음을 뜻한다.
만약 6자회담 틀에서 북한의 요구사항을 상당부분 충족시켜주었는데도 북한이 핵 포기를 끝내 거부할 경우 남한과 중국도 대북 제재를 거부할 명분이 없어진다. 남한과 중국이 대북제재에 동참한다면 북한은 버텨내기 어렵다.
식량과 에너지 지원, 경협 등을 통해서 남한과 중국이 북한에 대해 강력한 지렛대를 확보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누구보다도 김정일 위원장은 이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북한의 경제 상황도 김 위원장이 핵 보유를 고집하기 힘들게 돌아가고 있다. 북한은 2002년 7ㆍ1 경제관리개선조치로 시장경제적 요소를 일부 도입해 경제난 타개를 시도했다.
그러나 구조적인 공급부족으로 극심한 인플레에 시달리고 있고 식량난도 심각해 북한 자체 힘만으로는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북한은 유일한 해결책인 외부 세계의 자본과 기술 도입을 위해서라도 핵 문제를 해결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북한이 아무리 벼랑 끝 외교에 능하다 해도 핵 보유도 하고 외부 세계의 지원도 얻어내는 방법은 없다. 결국 김 위원장은 핵을 포기하고 국제사회의 지원 하에 개혁개방으로 승부를 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 위원장이 지난달 정동영 통일부장관과의 면담에서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고 강조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북한이 6자회담 복귀 결정을 내리고 남한과의 경협 확대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문제는 북한이 6자회담을 통해 체제안전을 보장 받고 핵을 포기한 이후다. 이 때는 남북경협 확대 등 외부세계와의 교류가 급속히 확대될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북한은 개방체제가 된다. 북한의 경직된 체제가 이를 감당할 수 있을까.
-北체재 개혁 감당이 관건
사회주의 시장경제로의 전환에 성공한 중국과 베트남은 집단지도체제의 탄력성으로 개혁개방에 의한 체제 압력을 흡수할 수가 있었지만 주체사상과 유일지도체제로 과도하게 경직된 북한의 상황은 다르다.
개방 과정에서는 북한의 인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과 요구도 한층 거세질 것이다. 북한은 최소한 중국이나 베트남 수준으로 인권 상황을 개선시키지 않고서는 미국 일본과의 관계정상화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김 위원장의 진짜 고민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에게 과연 핵 포기 이후 개혁개방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대두할 이러한 문제들을 헤쳐나갈 능력과 구상이 있는지 궁금하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