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엔 거스 히딩크, 2005년엔 크리스토퍼 힐”
외교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나오는 말이다. 월드컵 4강이라는 믿기 어려운 꿈을 실현시킨 히딩크처럼, 한국민이 염원하는 북핵 해결을 미국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힐 미 국무부 차관보가 이루어주기를 기대하는 간절한 희망이 담겨있다. 이런 기대는 국민 사이에도 넓게 퍼지고 있다.
한 네티즌은 “지난달말 힐 차관보에게 한국 이름을 지어주자”며 성은 ‘ㅎ’으로 시작하는 ‘한’씨로, 성명으로는 ‘한 구한(救韓)’‘한 평화’ ‘한 마루’ ‘한 구선(救宣)’ 등을 제안했다. 월드컵 직후 히딩크에게도 한글 이름이 생겼었다. 노무현 대통령도 13일 콘돌리사 라이스 미 국무장관과 힐 차관보의 예방을 받는 자리에서 “라이스 장관과 힐 차관보에 대한 역할을 기대하겠다”고 각별한 관심을 표시했다.
한국민의 광범위한 기대감은 외교관으로서 탁월한 능력, 한국에 대한 그의 각별한 애정에서 비롯되고 있다.
직업외교관인 힐 차관보는 1985년부터 3년간 한국에서 경제담당 1등 서기관으로 근무했다. 이때 둘째 딸 클라라가 용산에서 태어났다. 힐 차관보는 지난해 8월 한국 대사로 부임하면서 한국민의 성격과 기질을 깊이 이해하기 시작했다.
미국대사로는 처음으로 광주 5ㆍ18 민주화운동 희생자 묘역을 전격 방문하고, 반미 시민단체를 포함한 한국 인사들과 허물없이 얘기하고, 네티즌과 인터넷으로 소통하고, 한국민의 미국 비자 면제 방안을 추진하는 등의 행보는 이런 이해심에서 나왔다. 8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이지만 한미동맹이 크게 흔들렸던 시기에 그는 주한 대사로서 한국의 입장을 본국에 충분히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을 했다.
그의 능력 또한 인간성만큼 평가받고 있다. 올 4월 그가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로 옮길 때 미 행정부내에서 유럽전문가인 힐이 적격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자 라이스 장관이 “나는 유능한 사람을 원한다”고 일축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화다.
힐의 협상 스타일은 사태의 핵심에 바로 접근해 정면 돌파하는 것. 미국 주도의 보스니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경계선 획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은 것도 그다. 한국측으로부터 북측인사를 직접 만나 보라는 권유를 받고 9일 베이징에서 김계관 외무성 부상을 만난 것도 이런 기질 때문이다.
자신과 생각을 달리하는 내부 동료들을 설득하는 노하우도 뛰어나다. 워싱턴포스트는 14일 부시 행정부내 보수파들도 힐의 협상 능력을 믿고 있다고 전했다. 전임자 제임스 켈리 차관보가 매파들의 등쌀에 기도 펴지 못하고 꿈을 접은 것과는 많이 다르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6월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하면서 무려 10분을 할애하면서 “힐 차관보가 회담 대표로 있을 때 회담을 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북한도 힐 차관보에 기대를 갖고 있다고 한다. 6자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끈다면 힐은 한국 역사의 한 페이지에 이름을 당당하게 올릴 것이다.
이영섭 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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