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6자회담의 성패는 북한이 주장하는 ‘한반도 비핵화’에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3일 탕자쉬안(唐家璇) 중국 국무위원을 만나 “6자회담이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는 무대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는 김 위원장이 지난달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의 면담에서 “한반도 비핵화 선언은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고 말한 것과 같은 취지다.
이로 미뤄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이 설정한 회담의 새 좌표임이 분명하다. 정부 당국자들도 “북한은 4차 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뼈대로 풀어갈 것”이라며 “한반도 비핵화가 북핵 해결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3차례의 6자회담에서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을 주로 공격했던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를 왜 꺼내 들었고, 북한이 설정한 비핵화의 내용은 무엇일까.
먼저 당국자들은 한반도 비핵화는 그간의 북측 주장을 접고 새 주장을 펴기 위한 ‘깃발’과도 같은 것이라고 보고 있다. 북한은 2월10일 핵 무기 보유를 선언하고, 3월31일에는 6자 회담이 핵 군축 회담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4차 회담이 성사되면서 이런 주장을 접을 필요가 생겼고, 핵 보유 선언과 대척점에 있는 비핵화카드를 꺼낸 것이다. 또 남북한을 아우르는 한반도 비핵화 문제로 표현을 확대함으로써 북한만이 해결의 책임을 지고 있지 않음을 밝히고 있다.
북한이 상정하는 한반도 비핵화의 내용은 사실 염려된다. 남한과 주한미군의 핵 위협을 동시에 해결하자는 주장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주한미군의 핵전력, 미 핵항모와 핵잠수함의 한국 기항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여왔다. 북한이 회담장에서 벙크버스터 한국 배치 계획 등을 제기하면서 회담을 난전으로 이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더욱이 한반도 비핵화라는 주장은 매우 정치적인 함의를 띠고 있다. 1992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한 북한은 다음해 핵확산방지조약(NPT) 탈퇴를 전격 선언했고, 제네바 합의 이후에도 고농축 우라늄(HEU) 핵 프로그램을 개발하려 했다. 북한의 비핵화 주장은 강수를 준비하기 위한 예비조치로 활용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당국자들은 기존의 낡은 분석틀로만 북한을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남측은 한반도 비핵화선언을 제대로 준수하고 있어 우리에게는 별 문제가 없다”며 자신감을 밝힌 뒤 “북측을 예단하지 않는 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핵 포기라는 전략적 결정을 앞둔 북한의 사전 수순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영섭 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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