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 원유 가격이 급등해 배럴 당 55달러를 넘었다지만, 리터로 환산하면 350원 정도에 불과하다. 먹는 샘물보다 싸다.
하지만 국내 휘발유 가격은 오래 전부터 아주 비싸다. 국민소득을 감안한 실질 휘발유 가격은 미국의 7배, 일본의 3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의 2배 수준을 넘는다. 고유가 때문이 아니다. 휘발유 가격에 붙는 각종 세금 때문에 비싸다. 국내 주유소 공급 가격의 63% 이상이 세금인 것이다.
리터 당 2,000원이 넘는 고급 휘발유를 선호하는 계층도 있다지만, 서민들은 기름값 때문에 차량 운행을 자제한다. 낮에 주거지 주차장을 한 번 둘러보라. 텅 비었나 꽉 찼나. 사람들은 쓸데없이 차를 몰고 다니지 않는다.
실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당국은 걸핏하면 승용차 10부제를 들먹인다. 에너지 절감 비용이 연간 1조원을 넘는다지만, 이는 탁상 계산에 불과하다. 과거 10부제 실시 당시 주유소의 유류 판매량이 과연 얼마나 줄었었나. 관련 자료가 있나.
차량 운행의 기본 목적은 수송의 편리성이다. 그러나 10부제는 막상 필요할 때의 차량 운행을 제한한다. 에어컨이나 승강기 역시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한 설비가 아니다. 관공서에서 몇 푼의 전기 절약을 위해 공무원들이 비지땀을 흘리느라고 업무능률이 저하된다면 국가적으로 이익인가. 승강기 격층 운행으로 아침부터 짜증나게 만든다면 사회적으로 이득인가. 전체를 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국내 에너지 소비량의 50.8%는 산업용이다. 가정 및 상업용은 12.1%에 불과하다. 따라서 산업체의 에너지 절약이 우선이다. 더구나 생활이 선진화하면 민생용 에너지 소비량은 증가하기 마련이므로, 에너지 소비 억제는 후진화 정책에 다름 아니다.
전력 요금도 평균 판매단가를 100으로 했을 경우, 주택용, 일반용, 교육용은 각각 19%, 40%, 20%만큼 비싸지만, 산업용, 농업용은 20%, 56%나 싸다. 전시행정이 아니라 실효성 있는 정책을 펴려면 산업과 농업 등에 대한 에너지 관련 보조 정책부터 철폐하고 경쟁력이 배양되도록 유도해야 한다.
영업시간 제한 등 민생부문의 강제적 에너지 절약 정책은 주5일 근무제와도 상치된다. 국민 생활의 불편만 초래할 뿐 아니라 소비 심리를 위축시켜서 경기를 침체시킬 뿐이다. 충분한 에너지 확보는 정부의 책임임에도 불구하고, 후진국 정부는 국민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그러나 선진국 정부는 국민의 편의성 향상을 위해 노력한다.
조영일 연세대 화학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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