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런던 연쇄 폭탄 테러가 발생한 지 1주일 만에 영국이 다시 충격에 휩싸였다. 자살테러를 실행한 범인 4명이 파키스탄계이기는 하지만, 모두 영국에서 태어나 영국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자라난 청년들이기 때문이다.
BBC는 “가장 우려하던 최악의 악몽 시나리오가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BBC가 경악한 이유는 이웃의 평범한 영국 청년이 ‘내부의 적’이 돼 테러를 감행할 경우 앞으로 이를 막아내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들이 목숨까지 버리면서 같은 영국인을 살해했다는 것은 영국 사회의 이질화, 그리고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갈등과 분열을 말해주는 것이다. 영국 언론들은 혼란과 배신감에 몸서리치는 시민들의 반응을 연속적으로 전하고 있다.
가족의 신고로 드러난 정체 테러범 4명 가운데 정확한 신원이 밝혀진 것은 3명. 각각 19세, 22세, 30세인 평범한 청년들이다. 단서는 아들이 거꾸로 테러에 희생됐을 것으로 여긴 어머니의 실종 신고였다. 테러범 하시브 후세인(19)의 어머니 마리자는 테러가 발생한 7일 오후 10시 런던경시청에 “런던에 친구를 만나러 간 아들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신고했다. 경찰은 폭발한 2층 버스 잔해 속에서 후세인의 운전면허증과 옷가지 등 유품을 수거했다.
그에게 혐의를 둔 경찰은 2,500개의 CCTV(폐쇄회로) 화면을 추적한 끝에 11일 밤 후세인의 모습을 확인했다. 그는 테러 발생 30분 전인 7일 오전 8시20분 킹스크로스 역에서 다른 남자 3명과 군용 가방을 메고 여행을 떠나듯 흥분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테러범 4명의 얼굴이 드러난 것이다.
경찰은 12일 오전 6시30분 잉글랜드 북부 웨스트요크셔 주 리즈시와 루턴시에서 용의자의 집 6곳과 차량 2대를 수색했고 리즈시의 이슬람밀집 지역에서 공범 용의자 1명을 체포했다. 리즈시는 인구 71만 5,000여명 중 15%가 이슬람계다.
테러범들의 이동경로 테러범 4명은 런던에서 48km 떨어진 루턴시에서 6일 집결했다. 3명은 먼저 리즈시에서 만나 열차를 타고 루턴시까지 이동했고 나머지 한 명은 자동차를 이용해 폭발물을 실어 날랐다. 이들은 다음날 폭발물을 분배하고 오전 7시40분 런던행 통근열차를 타고 킹스크로스 역까지 유유히 이동했다.
이들은 잠시 계획을 점검한 뒤 곧바로 목표지점을 향해 흩어졌다. 후세인은 타비스톡 광장에서 폭발한 2층 버스에 승차했고 체육학 전공 대학생인 세흐자드 탄위어(22)는 엘드게이트이스트 역 주변에서 폭탄을 터뜨렸다. 8개월 된 아이 한명을 둔 모하메드 사디크 칸(30)은 런던 서부 에지웨어로드 역에서 자폭했다. 이들의 사체는 전형적인 자살테러범의 모습으로 머리부분 만이 남아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BBC는 “킹스크로스 역 주변에서 사체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며 “마지막 테러범은 도망갔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도했다. 이번 사건은 서유럽에서 발생한 최초의 자살폭탄 테러로 기록됐다.
평범한 이웃들 이들은 테러를 벌일 때까지 아무런 전과기록이 없을 정도로 평범했다. 탄위어는 리즈시에서 ‘피시 앤 칩’ 가게를 운영하는 아버지를 도와주고 크리켓 운동선수로도 활동하는 모범청년이기도 했다. 다만 이들은 최근 이슬람교에 깊게 심취했던 흔적이 뚜렷하다. 후세인과 탄위어는 테러 전 파키스탄에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어떤 계기로 이들이 테러를 공모하게 되고, 누구의 지령을 받았는지는 여전히 안개 속에 있다.
탄위어와 가깝게 지낸 모하메드 안사르 리아즈(19)는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잘해주는 청년이었다”며 “폭탄 테러를 저지르다니 상상할 수도 없다”고 경악했다. 후세인의 사촌은 “그가 최근 들어 종교에 심취했다”며 “하지만 지금 일어난 일이 믿어지지 않는다”며 괴로워 했다
고성호 기자 sung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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