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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 위의 이야기] 여름 귤과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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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 위의 이야기] 여름 귤과 할아버지

입력
2005.07.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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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 여름 귤이 났다. 귤이 꼭 송편만하다. 아니, 그보다 조금 더 큰 것도 있다. 그러나 대체로 그만하다. 송편만한 것 다섯 개를 주황색 망 안에 넣어 2,000원 받는다. 여름에 난 햇귤이 반갑고 예뻐서 여러 망을 사왔다. 파는 사람 말로는 여기보다 날이 따뜻한 제주에서도 비닐하우스에서 키운 귤이라고 했다. 작긴 하지만 바람을 안 맞고 자란 열매여서인지 여간 달지 않다.

나는 단 귤을 보면 아주 오래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이 난다. 할아버지는 집 안팎으로 참으로 많은 과일 나무를 심으셔도 신 과일을 조금도 드시지 못했다. 어느 해였는지 설 명절 때 아버지가 껍질을 벗겨 이미 한쪽 맛을 본 귤을 얼른 할아버지에게 드렸다. “아버님. 이거 드셔보세요. 이건 안 시고 아주 달아요.”

그러나 할아버지는 그 귤도 시다고 하셨다. 귤 한쪽을 드시는 시간이 우리가 그만한 크기의 엿을 입안에서 녹여먹는 시간만큼 걸렸다. 옆에서 할머니가 아기에게 하듯 과즙 알맹이를 몇 개씩 떼어 드렸다.

이 하우스 귤이라면 그렇게 시다고 하지 않으실 것 같다. 겨울에 귤보다 더 단 한라봉을 보아도 나는 가장 먼저 할아버지 생각이 난다.

/소설가 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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