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이 들썩일 땐 주변 시세를 빙자해 비싸게 분양하고, 잠잠해지면 고급화를 내세워 고가 분양하고….’
매 달 신고가(新高價)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건설회사의 고분양이 집값 불안을 부추기는 주범 중 하나라는 지적이 많다. 분양가 고공행진은 ‘고분양→주변 아파트값 상승→고분양 확산’의 악순환을 이어가며 주택 가격을 흔들고 있다.
건설사들은 시행사 마진이나 각종 금융 비용 등을 빼면 크게 남는 게 없다며 자신들이 집값 폭등의 주범이라는 세간의 여론은 과장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서는 건설사들의 주먹구구식 분양가 책정과 폭리 문제는 반드시 따지고 넘어가야 한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왜 오르나
시행사와 시공사가 공존하면서 생겨난 이중마진 구조가 분양가 상승의 주 원인으로 꼽힌다.
외환위기 이후 건설업체들은 부채비율 제한에 묶여 땅을 매입해 직접 아파트를 분양할 수
있는 여력이 크게 줄었다. 이 틈을 이용해 시행사들이 대거 등장, 이른바 '땅작업'을 통해
택지를 확보한 뒤 마진을 붙여 시공사(건설업체)에 넘기는 새로운 유통경로가 생겨났다.
시공사들도 이익을 남겨야 하는 만큼 결국 1개 택지에 복수의 공급 주체가 이윤을 챙기는
이중마진 구조가 생겨나면서 분양가가 그만큼 올라가게 된 것이다.
건설사들의 분양가 담합과 과도한 수주경쟁도 한몫을 했다. 또 재건축ㆍ재개발 수주를 위해 수 십억원의 돈을 뿌리고 조합과 결탁, 사업비 부담을 일반 분양가에 떠넘기는 행태도 분양가를 끌어올린 원인이다. 그러나 최근의 고분양가 행진은 업계의 폭리 때문이라기보다 택지의 독ㆍ과점 공급구조가 원인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현재 택지 공급은 정부 산하 한국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 각 지방자치단체 등이 전체의 80% 가량을 독ㆍ과점하고 있다. 민간 업체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비싼 값에 땅을 사들일 수밖에 없어 분양가가 올라간다는 것이다.
때문에 고분양가의 주범으로 꼽혀 온 부동산개발회사나 시행사, 재건축ㆍ재개발 조합 못지않게 택지 공급 주체인 정부와 공기업, 각 지자체도 폭리의 공범이란 비난을 피해가기 어렵다.
대책은
전문가들은 규제를 풀어 민간 건설사도 택지공급을 할 수 있도록 해 공공부문과 가격 경쟁을 시켜야 분양가가 내려갈 것으로 보고 있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현재의 도시계획 하에서는 민간이 택지를 개발할 수 있는 여지가 낮아 토공ㆍ주공 등이 공급하는 택지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며 “민간이 택지개발을 직접 할 수 있는 땅이 늘어나야 분양가도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시행사가 확보한 땅에 시공업체가 집을 짓는 구조를 개선하려면 건설업체의 부채비율 규정을 완화해 자체 사업 비중을 늘리도록 숨통을 틔워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주택수요 억제에 초점을 맞춘 대안도 있다. 민주노동당 이선근 경제민주화운동본부장은 “집을 여러 채 가져도 세금 부담 없이 시세차익을 누릴 수 있다는 기대감을 꺾으려면 보유세를 대폭 인상하면 된다”며 “필요 이상의 주택을 가지려는 수요가 줄어들면 청약 과열도 사라지고 건설사들도 분양가를 쉽게 높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분양가를 직접 규제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지만 한 번 자율화한 분양가를 인위적으로 낮추기는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분양가를 간접 규제할 수 있는 방안으로 ▦후분양제 전면 도입 ▦분양원가 공개 등이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후분양제나 분양원가 공개가 실제 분양가 인하로 이어질 지는 미지수라는 지적도 만만찮다. 분양가를 규제하기 보다는 소비자들의 혜택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김현아 부연구위원은 “후분양제를 도입해 간접적으로 분양가를 규제하더라도 분양 시점의 시장 상황에 따라 분양가가 높게 책정될 수도, 낮게 책정될 수도 있다”면서 “소비자가 받을 수 있는 혜택을 늘리도록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마포 상암지구가 분양원가를 처음 공개했지만 추가로 분양된 상암 아파트 분양가가 계속 오른 것을 보면 원가공개가 분양가 인하로 이어질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태훤기자 besa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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