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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현 교수의 빛으로 보는 세상] '혜성의 지문' 스펙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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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현 교수의 빛으로 보는 세상] '혜성의 지문' 스펙트럼

입력
2005.07.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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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4일, 인류가 만들어 낸 인공 발사체가 역사상 처음으로 혜성의 표면을 때렸다. 미 우주항공국(NASA)이 쏘아올린 우주탐사선 ‘딥 임팩트’ 호에서 발사된 충돌체는 태양 주위를 돌던 혜성 ‘템펠1’에 정확히 충돌하며 수천㎞에 달하는 분출기둥을 만들어 냈다. 혜성은 태양계 형성 초기의 물질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일종의 타임캡슐로 여겨진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이번 실험을 통해 혜성 내부 구조의 물리적 화학적 성분들을 조사, 태양계 형성 및 생명 탄생의 비밀을 풀 단서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렇다면 딥 임팩트 호는 혜성으로부터 분출되는 가스와 물질들을 구성하는 성분을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분출물들이 내뿜는 빛(전자기파)을 분석하는 것이 한 방법이다. 딥 임팩트는 분출물에서 나오는 전자기파의 스펙트럼을 측정할 분광기(分光器)를 탑재하고 있다. 분광기란 말 그대로 빛을 파장 성분 별로 나누는 것이다.

태양광을 빨강에서 보라까지 색깔 별로 나누는 프리즘이 분광기의 한 예다. 프리즘을 통과하면서 분해된 빛을 개별 파장과 각 파장에서의 에너지 세기로 나열한 것이 바로 ‘스펙트럼’이다. 스펙트럼을 얻게 되면 그 빛을 구성하고 있는 색깔, 즉 파장 성분 중 어떤 게 가장 큰 지를 알 수 있다. 우주에 존재하는 원소와 이들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물질은 모두 고유한 빛을 흡수하고 방출한다. 소금(NaCl)을 이루는 한 성분인 나트륨(Na)을 가열했다고 가정해보자. 열에너지를 받은 나트륨은 589㎚(1㎚=10억분의 1㎙) 근처의 두 가지 파장 성분으로 이루어진 노란 빛을 방출한다.

독일의 물리학자 요제프 폰 프라운호퍼는 19세기 초 태양에서 오는 빛을 프리즘으로 연구하다가 태양의 연속적인 스펙트럼의 중간중간에 특정 파장의 성분들이 빠지면서 검은 선으로 비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오늘날 ‘프라운호퍼선’이라 불리는 것으로, 태양 표면에 존재하는 원소들이 태양에서 방출하는 백색광의 특정 성분들을 흡수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따라서 프라운호퍼선을 분석하면 태양 표면층을 구성하고 있는 물질들의 종류를 알아낼 수 있다. 지구 대기 성분에 의한 흡수도 있지만, 이는 이미 정확히 파악돼 있어 분석에는 큰 문제가 없다.

물질의 흡수나 방출 스펙트럼은 바로 물질을 구분하는 ‘지문’이라고 할 수 있다. 가령 태양 빛의 프라운호퍼선을 분석했을 때 위에서 언급한 나트륨의 방출 파장(589.0㎚, 589.6㎚)과 동일한 위치에 두 개의 검은 흡수선이 존재한다면 태양의 대기층에는 나트륨이 존재한다고 얘기할 수 있다.

딥 임팩트에 탑재한 고분해능(高分解能) 망원경에는 적외선 분광기가 달려있다. 우리가 프리즘으로 가시광선을 색깔 별로 분해할 수 있듯이, 적외선 분광기는 충돌 과정에서 뜨거워진 혜성의 분출물에서 방출하는 적외선 영역의 빛을 파장 성분 별로 분해한다. 아래 그림은 1988년 측정된 헬리 혜성의 적외선 스펙트럼이다. 헬리 혜성이 내뿜는 가스에 물(H2O)과 이산화탄소(CO2)를 비롯한 여러 성분이 섞여 있음을 알 수 있다.

딥 임팩트가 측정한 분출물의 적외선 스펙트럼을 이미 알려져 있는 각종 성분들의 스펙트럼과 비교해 보면 템펠1이 내뿜은 분출물의 성분들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딥 임팩트 프로젝트를 추진했던 과학자들의 주된 관심사는 혜성 내부가 어떤 물질로 구성돼 있는가 하는 것이다.

템펠1에서 나오는 초기 분출물들이 혜성의 껍질 부분을 이루는 성분들로 이루어져 있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충돌체가 형성한 구멍(크레이터)의 밑 부분, 즉 혜성의 내부에 가까운 성분들이 분출물의 주성분을 이루게 될 것이다. 따라서 분출기둥의 스펙트럼을 시간에 따라 측정하면 우리는 혜성의 비밀, 그리고 태양계 형성의 비밀에 한 걸음 다가가게 되는 것이다. 딥 임팩트가 송신해 온 데이터를 해석하는 데만 최소 수 개월에서 수 년이 소요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 시간들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

한림대 전자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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