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괴담 4 목소리’는 여러 가지 점에서 기존 공포영화의 상식을 뒤엎는다.
관객과 함께 뼈 속 깊숙이 파고 드는 서늘한 공포를 나누어야 할 주인공 영언(김옥빈)은 도입부에 죽음을 맞이한다. 유령이 되어 학교를 벗어나지 못하는 영언이 겁에 질린 채 어둠 속을 서성이는 것도 공포영화의 관습과는 거리가 멀다. 살점이 떨어져 나가거나 피가 흥건히 스크린을 적시는 대신 여러 가지 소리가 신경질적으로 관객들의 고막을 자극하며 심장을 옥죄어 오는 것도 색다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한 시인의 시를 연상시키는, 자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비록 유령이라 해도 잊혀지지 않고 세상에 존재할 수 있다는 설정도 신선하기만 하다. 영언이 왜 죽음을 당해야 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해소해나가는 과정은 공포 영화라기보다는 추리영화를 연상시키며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빼어난 미장센을 통해 학교라는 공간을 소름 끼치는 공포의 근원으로 만들어내는 최익환 감독의 손길도 예사롭지 않다.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과 듣지 못하는 사람 사이의 간극이 관객들을 소스라치게 하는 것도 연출의 힘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새로운 시도와 창의력에도 불구하고 ‘여고괴담 4 목소리’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다. 어머니의 기일에 죽은 영언, 음악선생님(김서형)과의 구설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희연, 유령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정체 모를 학생 초아(차예련), 불의의 사고로 성악가의 꿈을 접은 음악선생님 등 얽히고 설킨 공포의 장치들이 관객들의 시선을 흐트러트린다.
혼란스럽게 전개되던 이야기의 실마리가 결국 영언의 분열된 자아를 통해 한꺼번에 풀려나가는 후반부는 관객들의 맥을 빠지게 하면서 공포의 밀도를 동시에 떨어뜨린다. 영화는 존재의 문제와 동성애 등 묵직한 소재에 지나치게 힘을 쏟다가 출구를 못 찾고 자신이 만든 미로 속에 갇힌다. 15일 개봉. 15세.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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