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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 살면서] 9ㆍ11 악몽 못깨어난 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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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 살면서] 9ㆍ11 악몽 못깨어난 美

입력
2005.07.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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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ㆍ11사태를 겪고 난 미국은 한 마디로 예전의 미국이 아니다. 외국인에 대한 적대감과 반이민 정서가 팽배해지면서 불법 체류자에 대한 단속도 대대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이런 중에 지난달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새 신분증 제도인 이른바 ‘리얼 ID법’에 서명했다. 국토안보부가 하부 시행령을 확정하여 2008년 5월부터 발효될 이 법안은 각 주가 불법체류자에게 운전면허를 발급하는 것을 금지하고, 면허증 안에 컴퓨터가 판독할 수 있는 개인의 신상정보를 수록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지금까지 미국의 운전면허증은 주 총무처가 발급해 왔고 모양과 수록된 정보가 주마다 달랐다. 그러나 이번에 통과된 리얼 ID 법안에 따르면 각 주는 운전 면허증에 국토안보부가 지정하는 신상정보를 반드시 수록해야 한다.

따라서 새 면허증에는 최소한 이름, 생년월일, 성별, 신분증 번호, 사진, 주소는 물론 앞으로 국토안보부가 확정할 추가정보(각자의 DNA 정보가 수록될 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가 수록된다.

앞으로는 새 면허증이 없으면 비행기는 물론 기차도 탈 수 없고 은행 구좌도 열지 못한다. 관공서 출입도 금지된다. 신분 도용의 위험성이 가장 크게 지적되고 있지만,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새로운 신분증 제도가 테러 방지에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다. 테러리스트들이 신분증 문제에 부딪쳐 계획을 포기하는 게 상상이 되는가.

또한 불법 체류자에게 운전 면허를 금지할 경우, 불법 체류자의 수가 줄어들기보다는 면허 없이 운전하는 불법 체류자가 늘어나 거리가 한층 위험해질 가능성이 크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미국이 경찰국가화하는 것이다. ‘누구나 유죄가 입증되기 전까지는 무죄’가 아니라 ‘누구나 적법한 시민임이 입증되기 전까지는 테러 용의자’인 것이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입법 사법 행정의 분리뿐 아니라 연방정부와 주정부 사이의 견제를 통해서도 권력의 집중을 막았다.

그러나 이 법안은 국토안보부에 막강한 힘을 실어주어 주정부의 권한이 침해당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불법 체류자 수가 가장 많은 캘리포니아 주의회는 최근 이들에게 제한적인 운전 면허증을 발급하는 법안을 심의 중에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법안이 논란의 소지가 많다는 것은 이 법안의 제안자들조차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이라크 파병 용사들을 위한 긴급 예산안에 포함돼 상원을 통과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아직도 9ㆍ11의 악몽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허둥대고 있다는 느낌이다.

한수민 미국 시카고 국제로타리 세계본부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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