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 XXX말야. 어디서 괴물 같이 생긴 X이 TV에서 설쳐대냐?”
“노래도 못 부르는게 이제 연기까지 한다고 날 뛰는 데 못 봐주겠더라.”
“그러지 말고 인터넷으로 걔를 집중 공격하자구.”
서울 모 초등학교 5학년 여학생 3명이 최근 나눈 대화 내용이다. 이들은 본격적으로 ‘안티연예인’ 사냥에 나서기로 했다. 각자 주요 포털 사이트를 분담하며 하루 최소 10개씩 해당 연예인에 대한 욕설 글을 올리기로 한 것. 이들 때문에 한동안 그 연예인은 출연하는 방송프로그램마다 근거 없는 악성 비방 글에 시달려야 했다.
여름방학을 맞아 초등학생들이 인터넷으로 몰려들고 있다. 학교와 학원을 오가던 학생들이 거의 하루종일 인터넷에 매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네티즌은 ‘여름방학 동안 인터넷을 점령하다시피 하는 초딩 때문에 인터넷 여름 재앙이 이미 시작됐다’고 표현했다.
초등학생 네티즌들이 인터넷에서 행하는 횡포는 상당한 골치거리로 알려져 있다. 주요 사이트 게시판마다 악플(악의성 리플ㆍ댓글)과 무차별 욕설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해대는 저질 글의 주범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13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PC방에는 초등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컴퓨터를 두드리고 있었다. 이들은 유명 포털 사이트에서 개설한 아동 온라인 게임을 하면서 상대방과 채팅을 하는데 대화창에는 낯 뜨거울 정도의 온갖 욕설이 난무하고 있다. 하지만 자리에 앉아 있는 초등학생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 표정으로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K(12)군은 “인터넷 채팅을 할 때는 심한 욕설을 마구 해대야 상대방의 기를 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달 서울의 한 초등학교 나모(29ㆍ여) 교사가 5, 6학년생 283명을 대상으로 인터넷에 욕설과 악플을 달아본 경험이 있느냐는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70% 가량이 경험이 있다고 했다. 인터넷상의 악의성 댓글이나 욕설을 올린 이유에 대해서 조사대상의 54%가 “특별한 생각이 없이 했다”고 답했다. 즉 ‘익명성’이란 방패 뒤에서 아무런 죄의식 없이 특정인에 대한 반감을 그대로 노출시키고 있는 것이다.
초등학생 네티즌들은 단순히 인터넷 게시판과 채팅사이트 뿐 아니라 정치 경제 등 각종 인터넷 설문조사에도 맹렬히 참여해 여론을 주도(?)하는 세력이 되고 있다.
구로구의 한 초등학교 6학년 J(12)군은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정치 관련 설문조사를 하길래 무조건 반대하는 응답 비율을 높이기 위해 친구들과 PC방에 가서 몇 시간 동안이나 클릭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문제는 이 뿐 아니다. 인터넷 온라인 게임이 대중화 하면서 게임 아이템이나 사이버 머니 등을 가로채기 위한 사기 사건 등이 초등학생들에 의해 벌어지기도 한다. 서울의 한 경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71건의 사이버 사기 진정 가운데 피해자와 피의자가 모두 초등학생인 경우가 300여 건으로 전체의 30%에 육박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아이들의 이런 행동은 ‘나는 이런 것도 해 봤다는 과시욕’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으며 방학 때는 이런 건수가 평소의 2, 3배에 달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초등학생들의 인터넷 관련 횡포에 대해 “강압적이고 단순한 제재보다 학교나 가정에서 끊임없는 대화와 교육을 통해 해결할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박상진기자 oko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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