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정부 때 추진된 빅딜의 대표적 실패사례이자 재벌 황제경영의 희생양으로 꼽혔던 하이닉스반도체(옛 현대전자)가 4년여의 구조조정으로 회생 발판을 마련한 뒤 어제 차입금 상환을 위한 자금조달에 성공함으로써 마침내 살아났다. 2001년10월 채권단 공동관리에 들어갈 때만 해도 시장은 하이닉스의 파산을 시간문제로 봤다.
1999년4월 LG반도체를 합병해 당시 현대그룹 핵심 계열사로 떠올랐지만 총수의 사적 이해를 뒷받침하는 수단으로 전락한데다 반도체경기마저 하락하는 바람에 15조원이 넘는 빚을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동성 위기는 곧 금융시장 혼란으로 이어져 그 후유증도 엄청났다.
그런 만큼 하이닉스의 재기가 갖는 의미와 교훈은 남다르다. 반도체를 제외한 사업과 자산의 과감한 매각, 적극적인 외자유치, 임직원들의 자발적 구조조정을 통해 지속가능한 수익구조를 만든 것은 우리 산업사에 남을 만하다. 채권단의 보조금지원 논란으로 초래된 통상마찰 해결의 돌파구가 마련된 것도 반가운 일이다.
반면 대규모 분식회계와 물타기 증자로 소액 주주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고 국가경제를 멍들게 했던 것 역시 잊어선 안 된다. ‘아시아 최대의 경영정상화 사례’라고 자화자찬하기 전에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가중시킨 부실의 원인과 과정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반성이 앞서야 한다.
갈 길도 아직 멀다. 새 주인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들쭉날쭉한 반도체경기를 이겨내며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 남는 항구적 핵심역량을 키우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때마침 공정위는 재벌의 소유지배구조 왜곡이 여전히 심각하다는 자료를 내놓았다. 총수 일가가 순환출자 등을 통해 2% 안팎의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이닉스의 재기를 계기로 우리 모두 기업지배구조 문제도 되돌아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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