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총수들은 복잡한 순환출자와 금융계열사 등을 통해 자신과 친인척이 소유한 지분보다 7∼9배 많은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우리나라와 유사한 재벌총수 기업지배 형태를 가지고 있는 일부 유럽 국가와 비교해도 8배나 높은 수준이다. 특히 재벌들은 계열 금융보험사를 통한 지배를 강화했으며, 재벌 계열사 중 60%는 총수 일가 지분이 단 한 주도 없는데 경영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2일 2005년 총수가 있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자산 2조원 이상) 38개의 소유지배구조에 관한 정보를 공개하고, 재벌 총수 일가의 직접 소유지분과 지배지분간 의 괴리 정도를 보여주는 소유지배괴리도와 의결권 승수(의결지분율을 소유지분율로 나눈 수치)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의결권승수는 의결지분율을 소유지분율로 나눈 수치로 승수가 2배이면 총수 일가가 실제 가진 지분의 2배에 달하는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유지배괴리도와 의결권승수가 클수록 소유지배구조의 왜곡이 심하다는 얘기다.
총수가 있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38곳의 소유지배괴리도는 31.21%포인트였고 의결권승수는 6.78배였다. 특히 자산 6조원 이상인 총수가 있는 출자총액제한기업집단 9곳의 소유지배괴리도는 35.24%포인트, 의결권승수는 8.57배로 나타나 자산규모가 큰 기업집단 일수록 소유지배구조의 왜곡이 심했다.
5대 그룹을 살펴보면 삼성의 경우 의결권승수는 7.06배로 중간 수준이었지만, 지난해보다 0.67배나 상승해 자산 6조원 이상인 14개 기업집단 가운데 가장 높은 증가 폭을 보이는 등 소유지배구조가 오히려 악화했다.
이는 올해 계열사의 삼성카드 증자 참여 등으로 전계열사 자본금 총계가 지난해 7조4,788억원에서 11조6,034억으로 크게 증가한 데 따른 것이다. 삼성의 경우 총수 일가가 0.84%의 지분으로 자산 100조가 넘는 기업군을 지배하고 있는 셈이다.
5대 그룹 총수 일가 지분율과 의결권승수는 현대차 3.34%ㆍ7.00배, LG 4.80%ㆍ7.74배, SK 1.45%ㆍ15.83배, 롯데 2.28%ㆍ4.61배 등이었다.
또 재벌 계열 금융보험사의 평균지분율은 12.58%로 지난해보다 2.64%포인트 늘어났다. 출자금도 2조4,307억원으로 692억원 늘어나, 정부의 억제정책에도 불구하고 재벌들이 금융회사를 통한 계열사 지배를 오히려 강화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삼성은 5개 금융계열사가 27개 계열회사에 1조2,756억원을 출자,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이 금융보험사를 통해 계열사에 출자한 전체 규모의 52.5%를 차지하는 등 금융계열사의 출자 규모가 가장 많았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소속 계열사 835개 중 총수 일가의 지분이 전혀 없는 곳도 502개로 전체의 60.1%를 차지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자산 규모 2조원 이상인 대기업은 대체로 총수일가가 5% 내외의 지분으로 거대 기업군을 좌지우지해, 도덕적 해이 위험성이 높은 상태”라며 “정부의 소유지배구조 개선 정책에 따라 총수 일가의 지분은 지난해보다 약간 높아졌으나, 금융 계열사를 통한 덩치 불리기는 여전하다”고 말했다.
정영오 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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