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만 보면, 삼순이(김선아)에겐 삼식이, 진헌(현빈)에겐 희진(정려원)이 어울린다. 하지만 MBC ‘내 이름은 김삼순’은 진헌과 삼순을 연결시킨다. 당연하다.
드라마는 원래 멋진 남자와 평범한 여자를 맺어주니까. 그런데 ‘…김삼순’은 진헌을 마냥 멋진 남자로 그리지 않는다. 그는 별명처럼 ‘삼식이’스럽다. 첫사랑이 돌아오자 미련 없이 삼순을 떠나면서도 삼순이 다른 남자 만나는 것은 못 참고, 삼순에게 키스하고 나서도 희진과의 관계를 정리하는데 어영부영이다.
진헌이 원하는 건, “편하니까” 삼순에게 돌아오려는 삼순의 옛 남자친구처럼 필요할 때 배를 베고 누워 자신의 어린아이 같은 모습까지 보여줄 수 있는 삼순이다. 그가 삼순이 희진으로 개명하려는 것을 반대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엔 반전이 있다. 사실 삼순은 또 하나의 희진이다. 그는 열정과 능력을 함께 갖춘 뛰어난 파티쉐이고, 대화 도중 계속 책을 인용할 정도의 문화적 소양과 상대방에 대한 배려까지 갖추고 있다.
삼순은 그가 롤 모델로 삼았던 과거의 피아노 선생님 희진이나, 여자들도 인정하는 완벽한 여자 희진 만큼이나 ‘희진스럽’다. 그래서 삼순은 말이 안 통하는 헨리(다니엘 헤니)와 친해지지만, 영어가 되는 진헌은 헨리와 친해지지 못한다. 헨리처럼 속깊은 남자와 친해지기엔, 진헌은 아직 철이 덜 들었다.
‘…김삼순’은 진헌의 말대로 “남자는 다 거기서 거기”고, 사랑이란 진짜 왕자님 대신 내 ‘딱딱한 심장’을 파고 들어온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왕자님으로 착각하는 것임을 고백한다. 삼순이 진헌을 포기하지 못하는 건 왕자님에 대한 환상 때문이 아니라 그를 놓치면 평생 혼자일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느낄 나이가 됐기 때문이다.
여성은 사랑의 객체에서 주체가 되고, 사랑은 판타지에서 남자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참아내며 그 대가로 휴대폰 단축번호 0번에 저장할 사람을 얻는다는 것에 만족하는 현실이 된다. 여성의 판타지 대상도 ‘백마탄 왕자님’에서 ‘돈과 마른 몸 빼고’ 노력으로 모든 걸 가진 여성으로 선회한다.
여성의 ‘사랑’ 대신 사랑을 하는 ‘여성’을 보여주는 드라마. 그러나, 이것은 시작일 뿐이다. 인생은 초콜릿 상자 같다던 삼순에게 더 이상 남자라는 초콜릿이 필요 없다면 어떻게 될까.
지금의 삼순은 진헌을 원하지만, 삼순 옆에는 그 모든 과정을 겪고 이혼한 둘째 언니가 있다. 혹시 ‘…김삼순’ 뒤에는 사랑 없는 외로움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사랑이 단지 호르몬 작용임을 알게 된 ‘돌아온 김삼순’이 이어지지 않을까. 설마, 사랑이 다 그렇겠느냐마는.
대중문화평론가 lennonej@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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