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훈 씨의 글은 몸의 문장이다. 그 몸은 사유 이전의 감각이고, 논리에 앞서는 본능이다. 그의 글이 대체로 슬픈 것은 몸의 논리가 슬프기 때문이며, 그의 눈빛이 때로 쓸쓸해보이는 것은 몸의 글을 머리로 써야 하는 상황의 구차함과 지겨움 때문인 듯하다.
그의 신작 장편소설 ‘개 -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은, 숫놈 진돗개 ‘보리’가 자신의 몸으로 배우고 싸우고 사랑한 삶과, 스스로 이해하는(또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삶을 동화처럼 편안한 문체로 전하는 소설이다.
수몰 예정지 마을에서 다섯 마리의 새끼 중 셋째로 태어난 ‘나’ 보리의 첫 감각의 기억은 “형제들의 몸의 느낌이었고 엄마 젖퉁이에서 퍼지는 냄새”다. 보리는 ‘고소하고 찰진’ 엄마의 젖꼭지를 차지하기 위해 형제들끼리 밀쳐내고 올라타면서 버둥거리며 삶을, 세상을 익힌다. “나는 내 몸뚱이를 비벼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그때 확실히 배웠고, 일생 동안 잊지 않았어.”(16쪽)
개의 세상공부의 깊이는 발바닥 굳은살로 드러난다. “내 발바닥 굳은살은 내가 살아온 모든 고장의 흔적과 기억들을 간직하면서 굳어져갔다.”(101쪽) 굳은살이 두터워지면서 보리는 어엿한 수컷으로 성숙해간다. 영역을 두고 이웃마을 도사견과 사투를 벌이기도 하고, 암컷 ‘흰순이’의 “몸 속으로 건너가고 싶”어 조바심을 치기도 한다. “흰순이를 찾아가는 길은 비에 젖었고, 슬픈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148쪽)
인간에 대해서도 배운다. “사람의 몸 냄새 속에 스며있는 사랑과 그리움과 평화와 슬픔의 흔적”을 알게 되고, 그 냄새가 “모두 사랑받기를 목말라하는 냄새”임도, “(인간은)개처럼 저 혼자의 몸으로 세상과 맞부딪치면서 …살아가지 못”하는 존재라는 사실도 배운다.(35쪽) “그것이 사람들의 아름다움이고 사람들의 약함이고, 모든 슬픔의 뿌리라는 것을”(42쪽) 배우고, “자기네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모르고”(124쪽) 사는 그들의 어리석음도 배운다.
보리는 마을이 수몰된 뒤 주인 할머니의 아들이 사는 서해 갯마을로 이사 왔다가, 가난한 어부인 새 주인마저 숨지고 식구들이 도회지로 이사가게 되자 다시 낯선 주인에게 팔려가야 할 처지가 된다. 하지만 보리는 개다.
“지나간 날들은 개를 사로잡지 못하고 개는 닥쳐올 날들의 추위와 배고픔을 근심하지 않는다.”(63쪽) 다만 ‘나’는 새로 이사 갈 마을에도 자신과 물고 뜯고 싸웠던 “악돌이가 여전히 힘세고 사납게 살아있기를” 또 “흰순이 같은 개들이 풀이 돋아나고 바람이 불어오듯 저절로 태어나주기를” 바랄 뿐이다.
거기서 ‘나’는 “여전히 냄새 맡고 핥아먹고 싸워야 할 것이었다. 어디로 가든, 내 발바닥의 굳은살이 그 땅을 밟을 것이고 나는 굳은 살의 탄력으로 땅 위를 달리게 될 것이다.”(231쪽)
“세상의 개들을 대신해서 짖기로 했다”는 ‘작가의 말’에 기댈 것도 없이, ‘보리’의 짖음은 작가가 갈구해온 실체적 언어 곧, 몸의 말임은 분명하다. 에나멜 피복을 입힌 듯 순해진 문체가 그 특유의 단단한 단문의 기품을 고소하게 감싸고 있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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