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공개된 중대제안의 핵심인 대북 직접 송전(送電)은 남한의 전기로 북한의 핵을 산다는 그림 속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북한 핵 폐기를 위해서는 안전보장과 경제적 대가 지불이 요구되는데 이번에 정부는 경제적 지원의 일단인 대북송전 구상을 발표한 것이다.
1994년 제네바합의 당시 북한은 핵 포기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안전보장과 관계정상화, 한미일 3국으로부터 2기 200만㎾의 경수로 건설을 약속받았다. 11년 후인 지금에는 한국 단독의 전기 지원, 미국과 6자회담 참가국들로부터 다자안전보장을 받게 된다는 밑그림이 제시된 것이다.
중대제안은 현재 한 발도 전진하지 않는 핵 협상의 돌파구를 뚫는 데 상당한 무게가 실려있다. 북미 양측이 핵 폐기와 보상의 동시 이행 여부,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권 허용 여부 등을 놓고 지루한 실랑이를 벌이는 와중에 나온 이번 제안은 북한이 보상을 실감토록 해 건설적인 협상으로 나설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다.
또 미국에게는 경제지원에 대한 부담을 덜어줘 대북 안전보장과 관계정상화 문제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줄 것이다. 결국 중대제안은 6자회담의 실질적 진전을 위한 촉매제 역할을 하는 동시에 민족 장래를 위한 남북 균형 발전에 기여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하지만 북한 입장에서는 이 제안을 선뜻 내켜하지 않을 수도 있다. 94년 당시 북한은 과거 생산 핵 물질과 핵무기를 온존하게 보유하는 대신 핵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 즉 현재 핵과 미래 핵을 동결하는 조건으로 대가를 따냈지만 이번에는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핵을 폐기하는 조건으로 비슷한 결과를 얻게 된다. 밑진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또 남한에 전기를 의존해야 하는 구도를 불안하게 생각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송전 구상은 중대 제안의 핵심이지만 전부는 아닐 것이다. 다만 협상이 진행되는 와중에 협상안을 미리 밝히는 것은 부적절해 여타 카드는 공개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향후 정부의 과제는 이러한 중대제안과 비공개 카드들을 미국의 협상안과 어떻게 유기적으로 결합하느냐에 모아질 것이다. 북한이 만족할 수 있는 미국의 신축적인 대북안전보장방식, 북측이 보다 안심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 등이 한미간에 적극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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