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의 잇단 연정 제의에 여야는 호응과 반박으로 대치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외형 속에서도 여야 내부에는 대세와는 다른 목소리도 있다.
우리당에선 경제난과 정체성을 이유로 한 연정 반대론이 있고, 한나라당 역시 이번 기회를 권력구조 개편의 공론화 계기로 삼자는 지적이 제기된다. 비록 소수론이지만, 어떤 계기가 생기면 이들 논리가 확산될 수도 있어 앞으로의 추이가 주목된다.
■ 열린우리당, "정체성이 다른데…"
열린우리당 내에서 연정론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문희상 의장이 전날에 이어 11일에는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를 직접 거명하며 대연정을 외치자 일부 의원들이 “이해할 수 없다“고 반발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연정론을 꺼낼 당시 못내 침묵을 지키던 것에 비하면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이들은 야당이 이미 반대입장을 분명히 해 연정이 성사될 가능성도 별로 없는데 지도부가 연정론을 고집, 정략이란 오해를 받는다며 불만을 터뜨린다. 아직은 소수지만 연정반대론이 엄존한데다 정체성과 직결된 사안이라 당내갈등의 새 불씨가 되기에 충분하다.
연정 반대론자들은 주로 개혁 성향 의원들이다. 우원식 의원은 “정체성이 다른 한나라당과 연정을 한다면 무슨 집권의 의미가 있느냐”며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당을 표방했으면 이를 밀고가야 한다”고 말했다.
개혁당 출신인 김형주 의원도 “한나라당과 연정을 하면 정치안정은 될지 몰라도 우리당이 추진하려는 정책은 펼 수 없게 된다”며 개혁실종 등을 우려했다. 386 출신인 송영길 의원은 “원칙도 없이 원내과반수가 안되니 이를 만회해보자는 식으로 해서는 곤란하다”고 동조했다.
정동영 통일장관과 김근태 복지장관 등 차기 대권주자 진영도 눈치를 보느라 말을 아끼고 있을 뿐 그리 탐탁해 하지않는다. 정 장관의 한 측근은 “지역독점 정당체제를 깬다는 점에서 연정은 의미 있다”면서도 “이를 내각제 개헌 논의등과 직접 연결시키려는 것은 비약”이라고 선을 그었다.
김 장관 계파인 국민정치연구회의 한 핵심 의원도 “공론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의미는 있다”면서도 “지향하는 가치가 다른 한나라당과의 연정은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다”고 에둘러 불만을 표시했다.
정녹용기자 ltrees@hk.co.kr
■ 한나라당, "개헌 논의는 필요"
한나라당은 박근혜 대표 등 지도부는 물론 의원들 대부분이 연정에 반대한다. 노 대통령이 실정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 국면 전환용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박 대표는 11일 경제 살리기를 위한 금리인상과 감세정책 등을 언급하면서 연정론을 재차 일축했다.
하지만 선거구제나 권력구조 개편에 대해서는 다른 분위기가 있다. 논의 개시 시점에서 차이가 나지만 일부 의원들은 현재의 정치구조를 바꾸어야 한다는 필요성에 적극 공감한다. 심지어 “노 대통령의 정략적 발상 때문에 개헌 논의가 아예 차단되는 것이 아니냐”고 우려하는 경우도 있다.
이병석 의원은 “노 대통령이 연정론에 이어 권력구조 개편에 대한 각론을 계속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며 “한나라당이 무조건 무시하기보다는 정국을 주도적으로 이끌기 위해 개헌논의를 먼저 제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회 내에 학자들과 의원들이 중심이 된 개헌 연구모임을 제안했다. 박형준 의원도 “1987년 개정된 헌법의 전반을 바꾸기 위한 학술적 연구모임을 국회에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선거구제 개편과 내각제 개헌에 적극적인 의원들은 지역 기반이 확실한 영남권에 비교적 많다. 이들의 논리는 “지역정치를 탈피하기 위해 비례대표제 강화 또는 석폐율 제도를 도입하고, 정치적 이념에 따른 연립이 가능한 내각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북의 한 의원은 “의원 입장에선 국회 중심의 내각제가 매력적이지만 지금 말을 꺼냈다간 괜한 오해를 살 수 있어 말조심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권혁범기자 hb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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