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보통신부가 인터넷 게시판 실명제 등을 골자로 법률ㆍ제도적 개선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인터넷에 대한 논의가 다시 뜨겁게 달아올랐다.
실명제란 말 그대로 인터넷을 실명으로 이용하도록 하자는 것인데 이는 인터넷상의 각종 불법 행위를 예방하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장치로 제시되어 왔다.
실명제는 이미 2004년 초에 ‘공직자 선거 및 선거 부정 방지법’에 일부 도입되었다. 당시에도 실명제 도입 여부를 둘러싼 찬반 논쟁이 뜨거웠으나 일부 제한된 범위 내에서 선거 기간에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표현에 대해서만 예외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묵시적인 동의가 있었던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인터넷 전체에 걸쳐 실명제가 도입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무엇보다도 헌법재판소가 인터넷을 ‘표현 촉발적 매체’로 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즉, 인터넷을 누구나 자유롭게 커뮤니케이션을 전개할 수 있는 공론장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익명성은 공론장의 핵심
그런데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은 오프라인에서는 받게 되는 ‘사회적 압력’이나 ‘보복의 두려움’ 없이 안심하고 자유롭게 참여하는 것을 포함하는 것이고 여기에 익명성은 빼놓을 수 없는 핵심적 요소가 된다. 이를 토대로 수직적 커뮤니케이션이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으로 진행되면서 진정한 공론의 교환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범죄행위의 많은 부분이 익명성으로 인하여 무분별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인터넷에서의 일시적 친밀감과 집단적 응집력으로 인하여 마녀사냥식 불법 행위가 자주 벌어지는 이유도 많은 부분 익명성에 기인한다고 하겠다.
예를 들어 선거에 나서는 후보나 장관의 홈페이지에 집단적으로 접속하여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매도하는 글을 남기거나 장난으로 유명인이나 연예인의 신상에 관한 허위사실을 게재하여 정신적 피해를 발생하게 하는 일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그런데 실명제로 인하여 발생하는 피해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쉽게 노출될 수 있다.
대표적인 커뮤니티 매체인 싸이월드의 경우 실명제를 택하고 있는데 이로 인하여 사건, 사고, 범죄에 연루된 피의자나 피해자의 홈페이지가 쉽게 드러나고 가족들 사진까지도 무분별하게 유포되어 프라이버시가 침해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 발생한 피해에 대해 구제를 받기는 대단히 어렵게 된다.
무엇보다 더 큰 위험은 익명성을 보호함으로써 인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 즉 익명성의 본질적 측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미국의 경우 1995년 연방대법원은 매킨타이어 사건에서 익명성을 정치적 비리를 고발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복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위대한 역사적 유산으로 판단하였다.
물론 이로 인한 폐해도 적지 않으나 인간의 가치 실현에 가장 핵심적인 ‘정치적 표현’이라는 것이 항상 용이하지 않다는 점에서 실명성을 강요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 궁극적으로 여러 기본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를 고려해서 익명성의 본질적 의미에 손을 들어 준 셈이다.
프라이버시 침해도 문제
결과적으로 실명제는 제도적인 측면보다는 예외적인 측면으로, 법적 측면보다는 정책적 측면으로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헌법에서 정하고 있는 과잉 금지 원칙에도 합당할 뿐만 아니라 실명제를 실시한다고 해서 인터넷 범죄가 모두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명제 실시로 부작용이 발생한다면 또 규제하는 법을 만들어야 할 것이고 이는 결국 치료가 병을 더 키우는 셈이 된다. 최소한의 법이 가장 좋은 법이라고 한다. 법적 규제에 앞서 익명성의 본질적 의미에 대한 고려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재진 한양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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