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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피플/ 전순표 세스코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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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피플/ 전순표 세스코 회장

입력
2005.07.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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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에 쥐가 사라진 뒤 바퀴벌레가 창궐했듯이, 바퀴벌레가 사라진 자리를 개미가 대신할 겁니다. 이제는 개미의 공격에 대비해야 할 때입다.”

한국판 ‘피리부는 사나이’로 불리는 해충방제 전문업체 세스코의 전순표(70) 회장은 요즘 개미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1980년대 쥐, 1990년대 바퀴벌레에 이어 최근에는 개미가 가정의 건강과 직장의 안전을 위협하는 새로운 해충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전 회장은 “개미는 겉보기에는 안전한 곤충처럼 보이지만, 각종 전염병과 피부병 등을 유발할 수 있는 위험한 해충”이라며 “최근 개미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바퀴벌레 소탕을 위해 백과사전 8권 분량의 매뉴얼북과 이를 총체적으로 관리하는 전산시스템을 만들었던 것처럼, 최근 사내 연구팀에 개미 박멸 시스템 구축을 지시했다.

주변에서 쥐가 눈에 띄게 많이 사라진 데는 전 회장의 공이 크다. 1960년 동국대 농대를 졸업한 후 농림부에 들어간 전 회장은 양곡창고 관리를 맡게 되면서 창고 쌀의 10분의 1을 쥐가 먹어치운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먹을 쌀도 부족하던 시절, 쥐가 대량의 쌀을 축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가만히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때부터 그는 쥐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다. 63년 선진 쥐 방제기법을 배우기 위해 영국 런던으로 유학을 다녀온 후에는 ‘쥐 잡는 날’을 정하고, ‘쥐꼬리 모으기 운동’을 전개하는 등 쥐 박멸 사업을 본격적으로 전개했다. 73년에는 동국대 대학원에서 국내 1호 ‘쥐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이듬해 세스코의 전신인 전우방제를 설립해 본격적으로 방제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사업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창업 후 수개월 동안은 영업 현장에서 문전박대를 당하기 일쑤였다. 당시에는 누구도 돈을 내고 쥐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95년 63빌딩 방제를 위해 2만평 규모의 한강 둔치에 사는 쥐를 모두 소탕하는 등 투철한 서비스 정신을 발휘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기관과 국내 유수의 호텔과 대형빌딩, 식품업체 등에서 앞다퉈 방제를 의뢰해 왔고, 이는 현재 10만개의 회원사를 거느린 세계적인 방제업체 세스코가 탄생하는 밑거름이 됐다.

전 회장은 “한때 하루 10만명의 네티즌이 방문할 정도로 홈페이지 ‘Q&A 코너’가 인기를 끌었던 것도 어떤 질문에든 성실하게 답변하는 세스코맨의 서비스 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투철한 서비스정신으로 고객들의 믿음을 얻는 데는 성공했지만, 의외로 직원들의 사기는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서비스 시스템이 아무리 잘 갖춰져 있어도 현장 직원들이 쥐나 바퀴벌레를 잡는 일을 창피하게 생각하는 한 최상의 서비스를 기대하기란 어려웠다.

전 회장은 해충 방제를 전문직종으로 인식시키기 위해 체계적인 해충ㆍ방제 교육을 실시하는 한편, 모든 장비와 차량, 유니폼까지도 최고 수준으로 바꾸었다. 무엇보다 서로를 존중하는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 사내에서는 직원들끼리라도 존대말 사용을 의무화했고, 부하 직원으로부터 얼마나 존경받는지를 인사와 연봉 결정에 반영했다.

전 회장은 “요즘엔 세스코 유니폼을 입고 학교에 가면 아이들이 사인을 요청할 정도로 이미지가 좋아졌고, 직원들도 회사와 업무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전 회장은 최근 국제적인 봉사활동 단체인 ‘국제 로터리클럽’의 ‘3650지구’(960클럽, 3,000명의 회원을 보유한 한국로터리의 종주지구로 서울지역을 관할)의 차기 총재로 지명됐다.

86년 지인의 권유로 로터리 클럽에 가입한 후 20년째 꾸준하게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전 회장은 2003년 11월에는 국제 로터리 재단에 25만 달러(2억5,000만원)를 기부해 ‘로터리 명예의 전당’에 초상화가 등재되기도 했다.

그는 “영국 정부의 장학금을 받아 유학한 덕분에 지금의 나와 세스코가 있을 수 있었던 것처럼, 누군가 나의 도움으로 자신의 꿈을 실현해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내가 진 빚을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국민 건강을 위해 꾸준히 해충을 연구하고 박멸하는 것도 봉사의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재연기자 poet33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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