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주빈국이 되어 치러지는 ‘2005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이 11일로 꼭 100일 남았다. 한국 문화를 독일, 나아가 유럽에 알릴 절호의 기회인 주빈국 행사는 3월부터 시작한 한국문학 순회낭독회(LiteraTour)로 사실상 막을 올렸다. 지금은 행사기간(10월19~23일)을 전후해 선보일 20여 문학, 학술, 공연, 전시 행사 막바지 준비가 한창이다. 프랑크푸르트 요지에서 곧 ‘한국의 정원’ 기공식도 열린다.
하지만 워낙 기대가 컸던 탓일까. 이번 행사는 시작 단계에서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민간자금 유치는 기대에 턱없이 못 미쳐 주빈국 조직위원회를 기운 빠지게 만들었다. 선정 때부터 시비가 된 ‘한국의 책 100’ 번역 출판은 여전히 비난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지난해 11월부터 주빈국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우창(68) 고려대 명예교수를 경복궁내 조직위원회 사무국에서 만났다.
대담=이준희 문화부장 junlee@hk.co.kr
_ 주빈국 행사는 이제 카운트다운만 남겨두고 있습니다. 자금 때문에 어려움이 많은 걸로 아는데 지금까지의 준비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전체적으로는 계획한대로 큰 문제 없이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다만 지금 단계에서 큰 돈을 바라진 않지만 배정된 예산 운용이라도 원활했으면 하는 바람은 있습니다. 대부분 정부예산으로 행사를 준비하고 있지만 민간의 지원을 전혀 안 받는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 돈 마음대로 쓰시오’하는 식은 아니지만 삼성전자에서 주빈국관 전시에 필요한 컴퓨터 장비구입 자금을 지원한다든지, 현대자동차에서 행사에 필요한 자동차를 대여한다든지, 국내 미술관들이 자체예산을 일부 들여 전시행사에 참여하는 것 등은 결국 조직위에 도움을 주는 겁니다. 출판계가 한국관을 맡아 조성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전체 예산 150억 중 정부지원을 뺀 나머지 30억원 정도가 이런 민간 지원입니다.”
_ 지난 달 독일에서 주빈국 행사 설명회가 있었는데, 현지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최근 주한 독일문화원장이 ‘과거 주빈국 행사를 치렀던 인도의 경우 흥미롭지만 혼란스러웠던 반면, 한국은 잘 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문화의 여러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나, 특히 일찍부터 한국문학 낭독회, 한국영화 순회상영전을 시작한 것을 좋게 평가하는 분위기입니다. 심포지엄 등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독일인들은 이번 주빈국 행사를 계기로 한국이 다양하고 심도있는 한독 관계를 맺으려 노력한다는 인상을 받는 것 같습니다.”
_ 현지 한국문학 낭독회는 얼마나 열기가 있었습니까?
“이런 형식의 낭독회에 지나친 기대를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 60명이 넘는 독일작가가 와서 전국을 순회한다면 몇 명이나 모이겠습니까. 그나마 우리 행사가 관심을 끈 것은 이런 형식의 낭독회나 토론회를 좋아하는 독일문화의 특수성 때문이라고 봅니다. 지난 달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 등 독일 주요언론의 문학담당 기자 6명이 방한 취재했고, 이달 초에도 슈피겔과 헤센주 방송사 문학담당자들이 찾아와 한국문화와 사회를 소개하는 기획기사 취재를 마치고 돌아갔습니다. 도서전에 맞춰 집중 게재될 것으로 봅니다.”
_ 주빈국 행사의 큰 소득이라면 어떤 것을 꼽을 수 있을까요?
“유럽과의 관계를 깊게 해서 유럽 사람들이 한국을 돈만 버는 나라 이상이라는 인상을 갖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주빈국관을 중심으로 여러 행사나 전시가 열리겠지만 전체적으로 한국이 세계공동체에서 자기 위치를 다져나가고 미래의 역사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공헌을 할 수 있는 나라라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한국의 문학전통은 서구처럼 직업적인 것이 아니라, 교양을 갖춘 모든 이들이 갖추어야 할 기본 자질 같은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보여주어서 독일인들이 자신의 문화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기회를 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_ 10여 년 전 일본이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 행사를 치른 뒤 독일에서 일본에 대한 인식이 매우 달라졌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우리도 그만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문화를 너무 현실적인 관점에서 보아서는 곤란합니다. 자꾸 세일즈를 하다 보면 자존심이 상하거나, 자칫 잘못된 인상을 심어줄 수도 있습니다. 문화는 자연스럽게 존경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세일즈를 할 때는 아주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합니다. 문화홍보를 국가주의나 민족주의, 상품전략의 관점에서 이해한다면 우리 문화의 손상 뿐 아니라 깊이 문화를 생각하는 외국인들에게 오히려 나쁜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적극적인 교류는 꼭 필요하지만 너무 상품전략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거지요. 이번 행사에서도 이런 원칙을 지키고 싶습니다.”
_ 대외적 효과 못지않게 이번 주빈국 행사가 우리 문화계에 끼치는 영향도 크지 않겠습니까?
“사실 저는 주빈국 행사의 가장 큰 소득이 그 부분이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독일 순회낭독회를 마친 작가들은 기본적으로 작품 쓸 때의 태도가 달라질 겁니다. 자기 작품이 한국 사람만 읽는 게 아니라 세계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라고 느낄 테니까요.”
_ ‘한국의 책 100’ 중 20% 정도가 여전히 해외 출판사를 정하지 못했다는 점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습니다.
“번역출간 문제 때문에 행사준비가 부진하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저는 거꾸로 생각합니다. 해외출간은 출판사 잡기도 어려운데다 적잖은 시간이 걸립니다. 그렇게 보면 1년이라는 짧은 기간치고는 성적이 굉장히 좋은 겁니다. 100권 중에는 제가 조직위와 전혀 무관할 때 정해진 제 책도 한 권 있는데, 그건 제가 미리부터 국내에서 번역 출판하겠다고 했습니다. 저술 의도를 잘 모르는 외국출판사에서 단기간에 책을 만들어낼 때 그게 잘 되겠느냐고 생각해서지요. 상황이 정 여의치 않으면 수를 줄일 수도 있고, 이미 번역된 다른 책으로 바꿀 수도 있습니다.”
_ 일본의 오에 겐자부로를 비롯, 주빈국 행사를 치러낸 몇 년 내에 공교롭게도 해당 국가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들이 자주 배출됐습니다. 우리도 그런 것을 기대해도 좋겠습니까?
“농담 삼아 이런 말을 합니다. 노벨상위원회에서 한국작가에게 ‘올해 노벨문학상을 당신에게 주기로 결정했습니다’는 통보를 받았을 때 그 작가가 ‘하루 저녁 생각해보겠다’고 말할 정도가 돼야 노벨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상에 너무 신경 쓰지않고 문학에 정진하는 게 중요합니다. 번역만 잘 되면 되는 걸로 아는데, 우선은 작품이 좋아야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_ 이번 행사 자체도 중요하지만 이를 계기로 한국에 대한 관심을 이어가는 것도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주빈국 행사 이후 독일사람들이 많이 달라질 것으로 봅니다. 물론 한국이 굉장한 나라라고까지야 생각하진 않겠지만 중요한 나라라는 인식은 갖게 될 겁니다. 행사 기간 독일사람들과 많이 접촉한 것이 토대가 돼 앞으로 다른 많은 일을 함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인적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체계적으로는 행사 이후 문화관광부에서 해외문화교류에 관한 담당기구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는 길에 조직위 출범 때부터 행사 준비를 진두에서 지휘하고 있는 황지우 총감독을 잠깐 만났다. 격무에 시달려 적잖이 상한 얼굴로 그는 “딱 5억원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정리=김범수기자 bs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