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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야 놀자/ 교육칼럼 - 자녀의 꿈 꺾는 진로강요는 '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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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야 놀자/ 교육칼럼 - 자녀의 꿈 꺾는 진로강요는 '毒'

입력
2005.07.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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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 문제 때문에 부모님과 크게 부딪혔다. 부모님은 내 꿈을 무시했고,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회의를 느낄 만한 말들을 많이 해서 큰 상처를 받았다. 이후로 난 부모를 부모라 생각하지 않았고, 결국 꿈을 접었다.”(여고 3학년생)

“난 만화가가 꿈이었다. 부모님께 이야기를 꺼냈는데 엄마가 쓰러지셨다. 손에 마비가 오고……, 정말 황당했다. 아빠가 말씀하셨다. 한 번 효도하는 셈치고 네 꿈을 포기하라고, 부탁한다고. 그래서 그날 이후로 만화가의 꿈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후에는 바텐더가 되고 싶다고 말했는데, 좀 심했다는 생각은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괜히 말했던 것 같다. 아무튼 그 이후 난 꿈이 없다. 되고 싶은 것도 없다.”(남고 2학년생)

청소년 시기가 되면 누구나 나름대로의 자기 진단과 상황 판단에 근거하여 미래의 청사진을 그리게 된다. 물론 아이들이 그리는 인생 그림은 솜씨가 미숙하여 구체성이 떨어지거나, 허황되거나, 간혹 술집종업원이 되겠다는 식의 엉뚱한 구석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부모가 자녀의 꿈을 무가치한 것으로만 폄훼하고, 부모가 생각하는 바를 자녀에게 주입시키려고 들면 그에 대해 반발하고 저항하게 마련이다.

진로 선택은 한 사람의 인생 향방을 결정짓는 중대한 사안이고, 미래에 어떤 결과를 낳을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기에 결정하기가 매우 조심스러운 사안이기도 하다. 또 부모와 자녀의 진로 희망이 다를 때 빚어지는 갈등은 여타의 문제로 인한 불화보다 강도가 높고 첨예하며 지속적인 특징도 있다.

진로 문제를 둘러싸고 부모 자녀 사이에 대립과 충돌이 발생하는 원인은 대략 두 가지이다. 하나는 부모가 자녀의 학업 능력 실상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자녀의 흥미 분야와 부모의 기대 욕구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의 실력을 과대평가하고 과잉 신뢰한다. 초등학교나 중학교 시절, 자녀가 가장 좋은 성적표를 들고 왔을 때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혹 기대 이하의 성적표를 보게 되어도 예외의 경우로 치부한다.(60명이 넘던 학급인원이 현재는 30명 선으로 줄었는데 부모들은 종종 30등을 중간 등위 정도로 착각하기도 한다.)

반면 자신의 학업 실력과 현재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는 자녀들은 취업반이나 전문학교 등으로 진로의 가닥을 잡는다. 자녀의 현주소를 모른 채 무관심했던 부모들은 뒤늦게야 실상을 파악하고 경악과 충격에 휩싸인다. 당장 학교를 때려치우라고 격노하거나, 자녀 교육의 책임 문제를 놓고 부모 간에 한바탕 회오리가 이는 것은 그런 연유에서이다.

한편 자녀의 흥미 분야와 부모의 기대 욕구가 서로 다른 데서 오는 갈등은 대개 상위권 학생의 가정에서 발생한다. 문학이나 예술을 하고 싶고, 순수 기초과학을 하고 싶다는 자녀들을 법대나 의대 쪽으로 진학시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마다하지 않는 부모들은 이른바 상류층에 많다. 실제로 최상위권에 속하는 학생들 대다수가 의대, 법대 지망생들인데 이들의 진로 선택에는 부모의 기대 심리가 투사, 반영되어 있다. 부모의 뜻에 따라 진로를 결정한 후 삶의 방향타를 잡지 못하고 표류하거나 뒤늦게 부모를 원망하는 청년들이 많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는 한 개인이나 가정의 불행일 뿐 아니라 사회적인 손실로 이어질 수도 있다.

얼마 전 영국 BBC방송이 영국의학협회의 연구 결과를 보도하였다. 의사 15명 중 한 명은 음주나 약물 문제가 있으며, 간경화를 앓고 있는 의사는 일반인보다 3배나 많은데, 이는 술집 주인과 종업원 다음으로 높은 수치라는 것이다. 이외의 다른 연구에서도 의사는 스트레스로 인해 일반인보다 평균 수명이 짧고, 자살률 또한 높다고 보고된 바 있다. 자신이 좋아서 선택한 일이었다면 병자를 구하는 일만으로도 보람과 행복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경우라면 선망의 시선과 높은 소득에도 불구하고 알코올중독에 빠져 자살하는 따위의 비극적인 선택을 하지는 않았으리라.

싫다는 아이에게 진로 선택을 강요하는 부모의 마음도 편할 리는 없다. 그러나 완고한 부모들은 설령 자녀와의 관계가 망가지더라도 끝까지 자신의 뜻을 관철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오기의 바탕에는 ‘자식은 세상물정 모르는 미숙아요, 부모는 경험 많고 현명한 판단가’라는 확신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부모의 판단이 얼마나 옳을지는 미지수다. 급변하는 사회에 대한 예측 자체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강요로 선택된 일을 하면서는 보람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의무로 하는 일은 노예의 일과 같은 것”이라고 러시아의 문호 ‘막심 고리키’는 말하였다.

모두(冒頭)의 두 학생처럼 부모와의 힘겨루기 끝에 성취동기 없는 껍데기 삶을 살게 할 것인지, 자기 나름의 꿈을 좇으며 생명력 넘치는 삶을 살게 할 것인지 부모들이 결정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다.

/신규진 서울 경성고 전문상담교사, ‘가난하다고 실망하는 아이는 없다’ 저자, sir90@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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