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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석재 교수의 건축, 우리의 자화상] (16) 할리우드 키즈의 양식-영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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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석재 교수의 건축, 우리의 자화상] (16) 할리우드 키즈의 양식-영화관

입력
2005.07.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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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쿼터제는 잊을 만하면 다시 불거져 문제가 되곤 한다. 미국 쪽에서는 한국 영화시장이 여전히 군침 도는 먹잇감으로 보인다. 우리는 절박하게 지켜야 한다. 얼굴 보기 힘들다는 스타들까지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는 진풍경도 벌어진다. 영화는 자본의 논리대로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미칠 만큼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다행히 요즘 한국영화가 꼭 스크린 쿼터제가 아니더라도 훌륭한 경쟁력을 갖춰 사랑받고 있다.

그런데 영화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이런 공방과 반드시 함께 생각되어야 할 것이 있다. 다름 아닌 영화를 담는 그릇, 즉 영화관의 건축양식 문제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 영화를 지켜야하는 것만큼 절실하게 영화관에 맞는 우리만의 대중양식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주변의 영화관을 보자. 모두 같은 모습이다. 둘 중의 하나이다. 미국 대중상업주의 양식 아니면 하이테크 아류이다. 이 둘을 적당히 버무린 혼합양식도 있다. 동일성도 문제지만 동일한 내용이 더 큰 문제이다. 이런 양식들은 모두 미국 소비자본의 침탈을 유도하는 선발대이기 때문이다.

전자의 양식은 주로 대형건물 내에 일부로 들어가는 영화관의 실내장식에 쓰인다. CGV가 이 양식으로 지어지는 대표적인 예이다. 프렌차이즈 개념으로 운영되는 상암동, 용산 등 여러 곳의 CGV에서 유사한 양식이 반복된다. CGV 외에 코엑스 몰의 메가박스 등도 이 경우에 해당된다.

이런 예들은 고전 장식주의, 카툰풍과 열대풍의 팝 건축, 디즈니랜드풍의 여행주의, SF풍의 신미래주의, 강한 원색의 색채주의, 기하 문양주의 등 온갖 종류의 미국식 대중상업주의 양식으로 지어진다. 미국, 특히 캘리포니아 지역에는 이런 종류의 상업건물들을 전문적으로 설계하는 RTKL 같은 설계사무소들이 있다. 국내의 영화관은 다시 이런 건물들을 똑같이 판박이 해낸다. CGV 영화관을 설계한 국내 설계사무소에 문의해보면 아니라고 잡아떼지만 그 닮은꼴에 고개를 설레설레 저을 수밖에 없다.

후자의 양식은 주로 건물 전체가 영화관인 경우에 나타난다. 아트레온, 단성사, 피카디리, 대한극장, 명보극장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예들은 모두 투명한 유리와 차가운 금속 재료로 지어지는 공통점을 갖는다. 또 하나 공통점이 있다. 오래된 극장들을 헐고 재건축이나 리모델링 형식으로 지었다는 점이다. 제일 처음 시작은 명보극장이었다.

대한극장이 뒤를 이었고 초조해진 다른 명문 극장들도 서둘러 합류했다. 돈 좀 들인 단성사와 피카디리는 그런대로 새 모습으로 변신했지만 중앙극장이나 서울극장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해 보인다. 지금은 스카라도 재건축 중이다. 대한극장이나 단성사 같은 경우는 하이테크 아류를 기본 분위기로 삼아 대중상업주의 양식을 섞어 쓴 혼합 양식으로 볼 수 있다. 순수 하이테크 아류의 최고봉은 아트레온이다. 신촌에 있던 녹색극장은 아예 이름도 아트레온으로 바꾸고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신했다.

두 양식 가운데 전자의 것은 흔히 할리우드 양식으로 불린다. 좁게는 할리우드 영화와 함께 생겨났다는 의미이다. 넓게는 할리우드라는 말로 대표되는 미국의 대중상업주의에 속하는 건축양식이라는 의미이다. 모두 같은 목적을 갖는다. 대중들의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소비를 즐겁고 밝은 이미지로 포장해내는 건축양식이다. 미국 내에서도 자유분방한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크게 유행하고 있으며 이런 점에서 할리우드와 지리적 기반을 같이 하고 있다.

더 확장하면 햄버거, 치킨, 아이스크림, 커피, 패밀리 레스토랑 등 미국 외식산업의 장식 어휘도 해당된다. 후자의 하이테크 아류도 할리우드 양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이테크 건축 자체가 일단은 ‘가능한 한 최대의 소비’를 지향하는 후기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양식으로 시작되었다. 원본 하이테크 건축에는 구조성 등 여러 다른 건축적 고민들이 함께 들어있지만 최근에는 패턴화한 껍데기만이 상업건물에 복사하듯 쓰이고 있다. 한국의 영화관은 좋은 예이다.

이런 현상들이 왜 문제가 되는가. 간단하다. 할리우드 양식은 미국 소비자본의 최첨병이다. 한때 ‘소비가 미덕’인 미국식 후기 자본주의가 부러움을 샀다. 하지만 국민 한 사람이 소비하는 소고기나 휘발유나 콜라가 많다는 것은 이제는 피해야 할 악덕이다. 이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살벌한 경쟁과 많은 수탈이 벌어지는가. 이 과정에서 개개인의 몸과 마음도 망가진다. 지구 전체로 보면 환경파괴, 빈부격차, 전쟁위험 등과 같은 대형 문제들을 점점 악화시킨다.

할리우드 양식은 이런 잘못된 욕심이 사슬을 이루며 돌아가게 해주는 톱니바퀴의 중심에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할리우드 양식이 범람하고 있다. 감성적 영화, 달콤한 아이스크림, 고소한 햄버거, 향긋한 커피향 등은 사람의 가장 원초적 본능을 장악하기 때문에 세뇌도 빠르며 한 번 세뇌되고 나면 중독성은 점점 강해嗤庸?오래 간다. 먹을거리나 기호품에 세뇌되고 나면 그 다음은 사회, 경제, 정치 같은 거대담론 구도에의 종속이 일어난다.

할리우드 양식의 건축 어휘를 하나하나 뜯어보면 사실 미국적인 것은 디즈니랜드풍 밖에 없다. 이 가운데 카툰을 제외하고 나면 그나마도 그 원본이 유럽의 고전 건축물들이니 엄밀히 따지면 미국 것은 거의 없는 셈이다. 디즈니랜드풍을 제외한 나머지 것들은 그 출처가 모두 다른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다. 열대풍의 나무들은 남태평양이, SF풍의 신미래주의는 1910년대 이탈리아가 고향이다. 색채주의는 그 출처가 너무 여러 곳이라서 딱 한 군데를 얘기하기가 힘들다.

하다못해 버거킹의 트레이드마크인 흑백의 정사각형 모자이크 장식도 가깝게는 1500년 전의 비잔틴이, 멀리는 2500년 전의 페르시아가 그 원산지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몽땅 할리우드 양식으로 둔갑하면서 미국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미국이 선점하여 돈을 쳐발라 각색해서 일단 자기 것으로 만든 뒤 군사력을 등에 업고 전 세계에 공갈협박해서 수출하다보니 어느새 미국을 대표하는 양식이 되어버린 것이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건축양식이 이런 식의 소비 상업양식밖에 없다는 것은 참으로 손가락질 받을 웃음거리이지만 우리는 여기에 목을 매달고 있다. 한국식 패스트푸드점이라는 롯데리아도 자본만 미국 자본이 아니지 건축양식과 콘텐츠는 모두 미국 것을 빼다 박았다. 한국식 모델을 개발하려는 노력은 처음부터 생각도 안 했던 업자들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이렇게 해야 망하지 않고 돈벌이를 할 수 있는 지금 우리의 사회풍조이다.

스크린 쿼터제는 한 마디로 한국 영화를 지키자는 것이다. 경제와 문화 양 측면을 갖는다. 한국 영화가 살아야 다음 영화에 투자할 돈이 확보된다. 영화는 사람들의 감성과 정신에 큰 영향을 끼치는 문화예술 분야이기 때문에 한국 영화는 죽어서는 안 된다. 한국 사람은 한국 영화를 봐야 된다. 할리우드 영화를 자꾸 보다보면 미국식 패권주의에 종속되는 세뇌교육을 당한다. 구구절절이 옳은 이런 논리들은 영화관에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

한국 영화를 지켜야 되는 것만큼 영화관도 지켜야 된다. 영화관이 미국식 대중상업주의 양식인데 그 속에서 아무리 한국 영화를 보며 애국심을 떠들어댄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한국 영화를 지키자며 울부짖지만 정작 영화관은 우리가 앞장서 자발적으로 미국식 대중상업주의에 갖다 바치고 있지 않은가.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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