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어렸을 때 어른들 몰래 어른들 술상에 남은 술을 홀짝이다 그만 취해버린 기억을 가지고 있다. 나 역시 어린 날 그런 기억이 있다.
일꾼 아저씨가 일하러 가 있는 밭에 새참을 겸해서 술을 가져다주는 심부름을 자주 했다. 막걸리는 주전자에 담고, 김치는 작은 접시에 담아 주전자 뚜껑 위에 놓는다. 그리고 젓가락은 주전자 주둥이에 끼워 산 너머 밭이거나 집 아래 벌판으로 술을 가져다준다.
술 주전자엔 술이 그 안에 3분의 2만 들어도, 또 그것을 들고 가는 사람이 아무리 조심을 해도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뗄 때마다 출렁출렁 술이 주전자 주둥이 바깥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이걸 논이나 밭까지 그냥 가져다주는 멍청한 아이는 또 없다. 어른들은 이 시고 쓴 것을 뭐가 맛있다고 먹을까 싶어 심부름을 가는 중에 주전자를 하늘 높이 쳐들고 주전자 주둥이에 내 주둥이를 대 보는 것이다.
어린 내가 술이 취하는 건 언제나 산 너머 먼 밭에 심부름을 할 때이다. 내가 걸어가는 길도 한 모금 마시고, 나도 한 모금 마시다 보면 아저씨가 마실 술은 언제나 반주전자 조금 더 남아 있을 뿐이었다.
/소설가 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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