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밀리 / 마이클 베다드 글. 바바라 쿠니 그림. 김명수 옮김. 비룡소
흰 눈이 두텁게 쌓여 있는 겨울, 소녀의 집에 편지가 한 통 떨어진다. “저는 이 꽃과 같답니다.
당신의 음악으로 저를 소생시켜 주세요. 그 음악이 저에게 봄을 가져다 줄 거예요.” 길 건너 노란 집 이층 오른쪽 방에 사는 신비의 여인이 납작하게 마른 초롱꽃과 함께 보냈다. 그날 밤, 소녀는 아빠가 불러주는 자장가 노랫말이 꽃잎처럼 내려앉는 이불 아래에서 그 꽃잎들이 내려앉는 소릴 들으며 잠이 든다.
집안 가득 엄마의 피아노 소리가 울려 퍼지는 아침, 아빠와 온실의 꽃을 돌보던 소녀는 묻는다. “그 아주머니는 외로울까요?”, “때로는 그렇겠지. 우린 모두 다 이따금씩 외롭단다. 하지만 그분은 시를 쓴다더구나.” 소녀는 또 묻는다. “시가 뭐예요?” “엄마가 연습하는 음악이 가끔 살아 숨쉬는 듯해서 몸이 오싹해지는 걸 느낄 때가 있는데 그런 신비한 일을 말이 할 때, 그걸 시라고 한단다.”
저녁놀이 노란 집 창문을 황금빛으로 물들일 때, 백합 알뿌리를 창턱에 늘어놓으며 다음 날 엄마 따라 노란 집에 갈 생각을 하던 소녀는 문득 두려워진다. 그리고 신비한 아주머니가 낯선 사람들이 찾아가면 숨는 것도 두려움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눈이 녹기 시작하고 지빠귀가 지저귀는 다음 날 아침, 엄마가 노란 집 거실에서 피아노를 연주하자 아주머니 목소리가 계단 위에서 내려온다. “동무님, 당신의 연주는 지빠귀 노래보다 아름답군요. 좀더 연주해주세요. 벌써 봄기운을 느낄 수 있네요.”
음악이 다시 시작되자, 소녀는 살금살금 방을 빠져나와 계단을 오른다. 층계 꼭대기에 눈처럼 하얗게 입은 여인이 무릎에 종이를 올려놓고 있다. “아주머니께 봄을 좀 가져왔어요.
땅에 심으면 백합꽃으로 변할 거예요.” 소녀는 알뿌리 두 개를 여인의 무릎에 내려놓는다. 여인은 엄마 손가락이 피아노 건반 위를 미끄러지듯 종이 위로 연필을 놀려 소녀에게 건넨다.
거실로 돌아와 음악을 들을 때, 소녀는 그것이 살아 숨쉬는 걸 느낀다. 햇빛이 온실 마룻바닥 위에서 춤추는 광경을, 아빠가 꽃잎을 뜯어내는 모습을, 그리고 시를 떠올린다. ‘지상에서 천국을 찾지 못한 자는 / 하늘에서도 천국을 찾지 못 할 것이다 / 우리가 어디로 가든 / 천사들이 우리 옆집을 빌리기 때문이다.’ (디킨슨의 시)
노란 집의 신비한 여인은 19세기 미국 시인 에밀리 디킨슨이다. 그녀는 20년 이상 자기 집을 벗어나지 않았다. 낯선 사람들을 두려워했지만 아이들에게는 언제나 친구가 되어 주었다.
전기란 한 인물의 영웅적인 일생을 전지적 시점으로 아이들에게 그 인물에 대한 존경심을 갖고 뭔가 배우기를 은근히 강요하는 문체로 쓴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졌다면 이 책을 읽어볼 일이다. 시인의 예민하고도 따스한 시를 닮은 듯한 문장, 섬세하고 세밀하며 시대를 드러내는 그림이 아름답다.
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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