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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부심이의 엄마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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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부심이의 엄마 생각

입력
2005.07.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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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살기도 바쁜 요즘, 여전히 겨레의 통일과 노나메기(너도 나도 바르게 잘 살자는 뜻의 우리말)의 값짐을 소리 높여 외치고 있는 이가 있다. 백기완(72)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바로 그다.

그런 그가 지인들에게 미리 받은 책값으로 어렵사리 자신의 회고록을 꾸렸다. 43편의 꼭지로 이뤄진 이 책에서 그는 장마당에 떨어진 엿을 주워먹던 황해도 은율 구월산 자락의 어린 부심이로 돌아가 간단치 않았던 옛이야기를 들려준다. 풀빛 바지에 빨간 저고리, 풀빛 고름의 옷을 뜻하는 ‘부심이’는 그의 어릴 적 덧이름(별명).

부심이가 살았던 옛살라비(고향)는 가난과 서러움, 억압과 눈물이 가득한 땅이다. 일제의 가혹한 수탈이 계속 됐기에 몸이 아픈 동네 아저씨를 위해 열린 굿 판에는 떡 한 조각이 없었다.

부심이의 할아버지와 큰 아버지는 뺏긴 나라를 되찾겠다 나섰다가 일본 경찰과 헌병에 붙들려 감옥에서 세상을 떴다. 이래도 철 모르는 부심이는 이팝(쌀밥) 한 그릇, 비계 달린 돼지 고기 한 덩어리 실컷 먹어보는 게 소원.

그러나 그 남루한 땅에는 또한 ‘십칠년을 장을 못 담글 만치 가난했던’ 살림 속에서도 ‘한 술(한 번) 태어났으면 기죽지 말고 죽어라고 하고 뜻을 펴보라’고 늘 비나리를 해주던 어머니가 있었다. 어머니의 비나리는 축구선수가 되기 위해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해도 안 되는’ 서울로 떠난 부심이를 지켰다.

부심이에게 서울은 철공장의 물지게 꾼을 노릇을 하며 돈을 모았지만 소매치기로 몰려 뭇매를 맞는 부당한 땅이었다. 보름 동안 쇠망치로 돌을 까는 일을 해서 한끼 밥값밖에 벌 수 없는, 절망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부심이는 눈물만 흘리는 대신 ‘뜻이 있으되 돈이 없으면 그 뜻을 살릴 수가 없는 잘 못된 이 벗나래(세상)를 냅다 차버리는 진짜 축구 선수가 되겠다’고 마음 먹는다.

6ㆍ25 전쟁으로 북에 두고 온 가족과 생 이별을 하게 되면서 이러한 각성은 ‘저 북쪽의 어머니와 남쪽의 부심이가 총칼을 들고 싸우는 꼴이 되게 만든 38선의 거짓, 38선을 만든 놈들을 그냥 내질러 이 땅을 하나로 만드는 축구선수가 되어야 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진다.

‘부심이의 엄마 생각’은 북쪽에 두고 온 육친에 대한 단순한 그리움에서 분단의 상처를 아직도 다스리지 못한 바로 이 땅에 대한 분노로 반 발짝 더 나간 것이다.

그러기에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그가 책 말머리에 쓴 글은 한층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것은 나이 일흔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애들처럼 어머니를 그리는 나의 피눈물이다. 이럴 수가 있는가. 눌러도 눌러도 어쩔 수 없이 솟구치는 피눈물, 그 얼룩진 자욱이라고 털어놓는다.’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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